▲ 황의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보분석실장

어느새 가을이다. 휴식과 여가가 주는 여유와 즐거움이나 가치는 무엇이고, 잘 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 사회를 말하는 많은 키워드 중에 ‘과로사회’, ‘피로사회’, ‘잠이 부족한 사회’가 있다.

지난 201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92시간으로 OECD 평균 1,705시간보다 길다. 가장 짧은 독일의 1.6배이다. 반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8.9달러로 33개국 가운데 28위로 OECD 평균의 66%이며, 미국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효과없이 일만 많이, 길게 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잠이 부족한 국가로 2012년 기준 평균 7시간 49분을 자는 것으로 조사돼, 18개 조사 국가 가운데 맨 꼴찌라고 한다. 한국은 자타가 알아주는 전 세계 최고의 일 중독 국가라고 한다. 잠의 부족은 긴 근무시간과 학업 부담 등 때문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일하고, 그만큼 자도 괜찮을까.

우리가 고도압축성장으로 세계 10위권 경제국가로 도약한 발판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매일 터져 나오는 각종 안전·재난 사고, 세계에서 발생률이 가장 높다는 산업재해사고는 ‘일 중독’과 ‘잠의 부족’이 중요한 단서이다. 우리 사회에게 주는 경고신호이기 때문에 두렵다. 수많은 질병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긴 시간 업무와 학습 부담에 따른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다. 2013년 건강보험 통계에 스트레스로 인한 환자는 86만여 명에 달하는 현실이 이를 웅변한다. 소득수준은 높아졌지만 행복지수는 매우 낮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급한 변화와 불안 현상이 힐링과 웰빙 열풍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지난 수 십 년간 한국 사회의 압축성장과정에서 쌓인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숨 막히는 경쟁과 빠른 변화에 익숙해지려는 행태의 산물이라는 진단이다. 한편으로는 자원이 부족한 좁은 땅덩어리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 살면서, 사회적 관계를 우선시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능력과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풍토 역시 원인이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에 더욱 신경을 쓰고 과시 목적의 행태로 기울기 쉬운 경향이다. “우리 기업들과 개인들, 보여주기식 부지런한 비효율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렇게라도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그래도 어쩔 수밖에 없다는 체념 섞인 한탄을 하기도 한다. 물질주의가 제대로 된 휴식을 가로막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기도 한다.



휴식과 여가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 환경이나 습관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한다. 휴가를 또 다른 업무처럼 대하는데 익숙해 평소보다 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숨이 가쁘다. 휴가와 여가에서도 과잉 의욕과 경쟁이 드러난다. 속도의 삶과 일상의 효율을 강요하는 세상을 거슬러 멈춤, 게으름,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역설이다.

건강뿐 아니라 일과 학업의 능률을 위해서도 휴식은 필수적이다. “한가롭게 지내는 것이 좋은 삶의 전제 조건”이라는 신경과학자 앤드루 스마트의 메시지를 새겨 둘 만하다. PC 앞을 떠나더라도 휴가지에서, 쉬면서 이제는 손에 쥔 스마트 기기로 쉴 새 없이 각종 정보를 조회하고 연락을 한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가로움 속 참된 안식처가 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간은 신의 선물”이라며 인터넷과 스마트폰, TV드라마 등에 시간을 낭비 말고 귀하게 쓰라는 충고를 했다. 제대로 일을 하고 쉼을 가지려면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잘 산다는 의미, 쉰다는 것의 가치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물질주의의 여가 문화를 벗어나 생각해 본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소박하면서 단순하게 제대로 쉬는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베개를 끼고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무작정 쉬엄쉬엄 동네 주변이나 한강둔치라도 돌아다니는 ‘생각 없이 사는 시간’을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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