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는 강력사건 현장에 그녀가 있었다
불모지 범죄분석 영역
열정 하나만 믿고 선택
양양 일가족 방화사건 등 10년 세월 300여건 맡아

▲ 이미연 강원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수사관이 사무실에서 수사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진우

혈흔이 낭자한 살인사건 현장. ‘원주 치과 조무사 살인사건’ 현장은 피비린내로 진동했고 시신의 모습은 처참했다.

당시 내 나이 스물 다섯. 시신도 또래에 불과해 보였다. 흥분이 극에 달했고 순식간에 (현장에)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었고 머릿속은 온갖 물음표로 채워졌다.

지난 2006년 1월.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요원)로서 잊지못할 나의 첫 사건 현장이다.

강원도내 유일한 여성 프로파일러 이미연(34·인제출신·강원경찰청 소속) 경사의 회상이다. 이 경사는 지난 2005년 7월 경찰청 프로파일러 1기로 특별채용 된 ‘경찰 1호 프로파일러’다. 동기는 16명에 불과했고 지금도 전국에 30여명에 불과한 전문 요원이다.

강원대에서 심리학(석사 수료)을 전공한 그는 경찰청의 특별채용 공고 소식을 듣자마자 지원 서류를 넣었다. 대구지하철 방화(2003년)사건에 이어 연쇄살인범 유영철(2004년)이 검거되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전문요원의 필요성이 제기될 당시였다. 불모지인 범죄분석 영역이였기에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지만 역동적인 업무를 하고 싶다는 뜨거운 열정 하나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2006년 1월 강원경찰청에 발령받아 올해로 10년째 도내 유일한 길을 걷고 있다.

일반적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연쇄살인 사건 수사 등에 투입되는 업무 특성상 도내 강력사건이 있는 곳은 늘 함께 했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다액절도에 이르기까지 300여건의 사건 현장에 그가 있었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거나 부패 돼 구더기가 들끓는 현장도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거나 미간 하나 찌푸리는 법이 없다. 그런 당찬 패기 덕에 보람은 저절로 찾아왔다. 그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양양 일가족(4명) 방화 사건에서 피의자의 진술조서 분석을 통해 거짓 징후를 밝혀내고 행적에 대한 의심점을 분석하는 등 검거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 돼 특진했다.

사건 발생에 매번 정해진 시간이 없기에 그의 하루 일과는 ‘역동’ 그 자체다.

그는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사건이 발생하면 팀원들과 함께 현장에 간다”며 “거짓말탐지검사 업무도 병행해 늘 사건 서류를 손에 쥐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강력사건의 발생부터 검거 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알고 분석해야 하는 만큼 매번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동료들과의 소통과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절실히 느낀다. 그는 “수사·형사 활동은 절대 혼자 하는 업무가 아니다”며 “늘 가족처럼 돌봐주고 챙겨주는 선배와 동료들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올해로 경찰의 범죄분석 역사도 이 경사의 추억과 함께 어느덧 10년이 됐다. “더욱 분발해 경찰 70년 역사에 걸맞는 탁월한 수사관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다짐은 ‘1호 프로파일러’라는 칭호에 더할 나위 없었다.

“아무나 해병대가 되면 나는 결코 해병대에 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아무나 경찰이 되고, 아무나 범죄분석을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이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경식 kyungsi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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