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대 목기명산지 인제 맥 살리는데 심혈”
나무 매력에 빠져 35년 동고동락 중
청년 문학가 꿈꿔

 

“서민생활에 쓰였던 인제 전통목기는 대한민국 전통목기의 자존심입니다.”

박영식(54) 대한민국 전통명장(전통생활목기)은 투박하지만 정겹고 실용성 있는 인제 전통목기의 매력에 빠져 35년 세월동안 길고 험난한 목공예가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

600년 전통의 인제목기는 대부분 소반,함지(귀함지·도랑함지·전함지·매함지 등),이남박 같은 생활목기였다. 남원목기는 주로 제기용이었고 서민생활용 목기는 인제에서 많이 만들었다. 실제 1927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의 물산’에 인제는 남원과 함께 조선 2대 목기명산지로 함지 등 서민생활 목기 17종을 생산해 전국 각지로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박영식 전통명장은 나무의 매력에 빠져 평생 동고동락하고 있다.

나무는 저마다 매력이 있다. 엄나무는 결이 촘촘하고 예쁘며 안정감을 줘 정겨운 그릇을 깎는다.

밤나무는 결이 붉으면서 강렬하고 거칠어서 큰 그릇을 만들기에 좋다. 가래나무는 결이 없고 조각이 편해 쟁반종류를 만든다. 은행나무는 무늬가 없고 깔끔해 사람,얼굴,여성상 등 입체조각에 많이 쓰인다.

흔한 나무는 장인정신을 통해 귀한 목기가 된다. 귀함지를 깎아서 말리면 10개 중 3∼4개 정도는 갈라진다. 아무리 땀이 배어 있어도 갈라진 것은 버린다.

속초 출신의 박영식 명장은 청년시절 문학가를 꿈꾸며 소설을 썼다. 서울의 출판사(교학사)에 근무하다 그만두고 속초에 머물던 20살의 박 명장은 우연히 강인석 목공예가(내설악예술인촌 초대관장)를 알게됐다. 그 후 7∼8년간 사부와 제자의 관계로 목공예를 배웠다. 당시에는 주로 예수상 등 종교조각을 했다.

목조각을 배우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놓지 않았던 그는 신춘문예에 계속 떨어지자 어느날 술에 만취돼 사부의 공방 유리창을 모조리 깼다. 그럼에도 사부는 “목공예를 계속 해보라”며 다독였다.

그렇게 박 명장은 목조각에 취해갔다. 조각을 하다 하루에 세곳을 다치기도 했다. 한손을 다치자 반대편 손으로 칼을 잡았고 결국 허벅지까지 다치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 그는 시인·소설가가 돼 내린문학에 소설 3편과 다수의 시를 발표했고 전통생활목기 전통명장이 됐다.

그는 1987년쯤 인제 한계리에 민예단지가 생기면서 박 명장과 사부는 터전을 옮겼다. 인제에 자리잡은지 2년 뒤 사부로부터 독립했다. 국도 4차선 확장과 IMF 여파로 민예단지가 하락세를 맞자 2002년 경기 마석으로 가 불단 등 일본조각에 몰두하기도 했다. 2010년 인제로 돌아와 예공방을 운영하며 전통목기 제작에 천착하고 있다.
 

▲ 박영식 전통생활목기 부문 대한민국 전통명장이 인제 덕산리 예공방 작업실에서 인제전통목기인 귀함지를 깎고 있다. 인제/이동명

박 명장은 2013년부터 인제지역자활센터 전통목기사업단을 이끌며 목기의 상품화,대중화에 노력했다. 그는 2011년 인제전통목기 전국공예대전 대상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고 지난 5월 전통명장에 선정됐다.

박 명장은 “일반인들이 ‘좋다,예쁘다,사고싶다’고 생각하는 목기가 명품”이라며 “명장으로서 가치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수강생 10여명을 모아 목공예 전문교육을 통해 후계자도 양성할 계획이다. 또 오는 9월 자활센터 전통목기사업단의 자활기업 독립을 앞두고 준비에 바쁘다.

박영식 명장은 “예전에 한번 다듬었다면 앞으로는 두번,세번 다듬어서 창의·실용·현대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며 “특히 인제전통목기 나아가 대한민국 전통목기의 맥을 살리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제/이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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