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모두 열매가 되려하고/아침은 모두 저녁이 되려 한다./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나니/모두가 그렇게 바뀌어가는 것들뿐.”고교시절 한 친구가 애송하던 헤르만 헤세의 ‘시드는 잎’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몇 안 되는 구절 가운데 하나다.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고,그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시간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전해 간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라고 했던가.병신년 한 해도 이제 마지막 한 주를 남겨뒀을 뿐이다.한 해의 끝자락에서 뒤돌아보면 어디 한순간인들 순탄했으랴.지나고 보면 그저 물 흘러가듯 한 것이지만 그 순간순간은 곡절의 연속이요 고비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을까.그래서 뭔가를 이뤘다는 성취감보다는 아쉬움 속에서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올해는 그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서 연말을 맞는다.그만큼 부지불식간에 한 해의 끝자락에 당도해 있는 것 같다.이맘때면 교수신문이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가 발표돼 관심을 끈다.올해도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 611명의 교수들을 상대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그 결과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병신년 2016년을 함축하는 어휘로 뽑혔다.

이 말은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온다.“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와 같다.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는 구절 속에 이 말이 보인다.지난 몇 달 정치는 실종되고 온 나라가 큰 혼란 속에 빠져 있다.국가권력과 정치가 혼란을 수습하기보다는 되레 소용돌이의 진원이 돼 있다.정치와 권력이 이처럼 국민의 실존과 유리된 적이 있었던가.

이 말은 정치와 백성과의 숙명적 관계를 환기시켜 준다.정치의 뿌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백성을 외면한 정치가 존재할 수 있는가.이 세모에 던져진 화두다.그만큼 국가권력과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국가권력이 사적으로 농단되고 대통령은 탄핵 심판의 대상이 돼 있다.정치는 사분오열돼 민생을 돌볼 겨를이 없다.정치의 기본을 다시 생각하며 한 해를 마감해야 하겠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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