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세월은 간다.강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해가듯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그 어떤 작위로도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이 이런 변화다.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이 같은 시간의 흐름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병신년(丙申年) 한 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 데 오늘내일이 지나면 새해다.해마다 이맘때면 한 해를 보내는 일로 요란해 진다.이런저런 송년모임으로 들뜨고 떠들썩해 진다.

그러나 올해 연말분위기는 사뭇 다르다.흥청망청하던 분위기가 크게 줄어들고 차분한 가운데 연말을 맞고 있다.오랜 경기불황이 이런 달라진 분위기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넉넉하지 못한 씀씀이가 먹고 마시는 송년회를 자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김영란 법 시행으로 외식문화가 크게 바뀐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최순실 게이트나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태도 연말분위기 변화에 한 몫을 거들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차분히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 하겠다.연말의 술자리는 과음으로 이어지고 예기치 못한 불상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경우에 따라서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낳게 된다.결국은 지난 시간을 잊겠다는 망년(忘年)의 의미에 빠져든 결과다.그러나 올핸 간단한 점심으로 송년회를 대신하거나 봉사활동으로 의미 있는 연말을 보내는 경향도 두드러진다고 한다.

송년회가 발산하는 방식에서 성찰하는 쪽으로 바뀐다면 의미가 있다.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송년의 자세가 아닐까한다.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충격적 사건이 많았고 어려움이 컸던 한 해다.그 거대 이슈와 담론이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빨아들였다.이런 흐름에 그저 나를 의탁해도 좋을 것인가.잠시 가쁜 숨을 돌리고 헨리 데이비드의 ‘여유로운 시간’을 음미해 보면 좋겠다.

“만일 근심에 가득 차, 서서 응시할 시간이 없다면/이게 도대체 무슨 인생인가./나뭇가지 아래 서서 양이나 소들처럼/오래 응시할 시간이 없다면./숲을 지나며, 다람쥐들이 풀밭에/나무 열매를 숨기는 것을 볼 시간이 없다면./백주대낮에도, 밤하늘처럼/별들로 가득 찬 시냇물을 볼 시간이 없다면./미의 여신의 시선에 뒤돌아서서,/그녀의 발이 어떻게 춤을 추는지 볼 시간이 없다면.” 그 여백이 필요한 시간!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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