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텁게 유지된 박-김 친분, 김진선 체제 출범 밑그림 됐나
박, 올림픽 유치위해 사면복권
청, 2007년 유치 실패에 쓴소리
2010년 182일 해외 체류 활동
김진선 전 위원장과 공동 보조
“김 위원장 인선 도왔다” 소문도

▲ 지난 2011년 2018 평창동계올림픽 IOC실사가 열리고 있는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홀 프리젠테이션장앞에서 김진선(오른쪽) 특임대사와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본사DB
▲ 지난 2011년 2018 평창동계올림픽 IOC실사가 열리고 있는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홀 프리젠테이션장앞에서 김진선(오른쪽) 특임대사와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본사DB

2007년7월,과테말라에서 평창이 소치에 패한 직후 노무현 전대통령과 동행한 청와대 기자실과 청와대 핵심 인사 몇몇이 참석한 작은 뒤풀이가 열렸다.당초 유치되는 것을 전제로 연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행사는 모두 취소된 뒤였다.이 자리에서 현재 문재인 정부의 핵심 실세로도 잘 알려진 청와대 비서관이 한마디 툭 던졌다.

그는 “올림픽 유치에 뛰라고 재벌총수들을 사면복권까지 해 주었는데 역할이 없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그가 지목한 이가 당시 박용성 두산중공업회장이라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박 전회장은 2005년 11월 수백억 원의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집행유예형을 받았다.노 전대통령은 IOC위원인 박 전회장의 역할을 감안,동계올림픽에 올인하는 것을 명분으로 2007년2월 사면복권 명단에 포함시켰다.그러나 평창이 소치에 맥없이 지면서 청와대 일각에서 박 전회장의 유치 활동에 의구심을 제기한 것이다.

더욱이 과테말라총회 현장에서 “평창이 이겼다”는 정보가 청와대 한 수석을 통해 노 전대통령에게 보고됐는데 그 최초의 발설자로 박 전회장이 지목돼 있는 상황이었다.이에 대해 박 전회장의 한 측근 인사는 “그런 얘기가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 듣기는 했다”며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보고하는 것이 더 문제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이 인사는 “당시 유도연맹 회장을 맡고 있어서 주로 그 쪽 인사들을 중심으로 접촉했다”며 “당시에는 강원도와 청와대 등 일부에서 정보를 독점,제대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물론 노 전대통령은 유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지만 참여정부 일각에서 박 전회장에게 불편한 시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박 전회장은 2년 뒤인 2009년2월 대한체육회장으로 취임,체육계의 수장이 되면서 다시 한 번 동계올림픽 유치를 진두지휘하는 자리에 올랐다.박 회장은 2018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체육회 박양천 국제위원장과 비서실장,국제교류팀으로 유치지원단을 구성,지원에 나서는 등 유치활동에 올인했다.공식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유치 한 해 전인 2010년에는 182일을 해외에 체류하며 유치활동에 나섰다.재계에서는 박 회장 외에도 삼성의 이건회 회장과 유치위원장인 조양호 한진회장까지 거의 총 출동한 셈이 됐다.

박 전회장은 강원도지사를 지낸 김진선 전조직위원장과의 친분도 두텁게 쌓았다.박 전회장은 지난 2002년 김 전위원장이 전북 무주와 유치후보도시 단일화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 해 2월 열린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현장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면 후보도시 단일화는 불가피하다”며 단일화를 주장했다.후보도시 단일화를 주장해온 김 전위원장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당시 체육계 실세였던 김운용 전대한체육회장이 “두군데 다해도 된다”며 유치후보도시를 평창과 무주 공동개최로 결론낸 직후였다.

이후 김 전위원장과 박 전회장은 공동보조를 취하며 올림픽 유치 전면에 나섰다.이건희 전회장의 사면복권에도 대한체육회와 강원도가 공동보조를 취했고 사적인 애기들이 오갈 정도로 친분관계가 유지됐다.

박 전회장측은 “원래 김 전위원장께서 남에게 싫은 소리하지 않고 남을 욕하지 않는 인품을 가지고 계셨던 터라 얘기가 잘 됐다”며 “사적인 만남에서 가벼운 부탁도 할 정도로 친분이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가끔 박 전회장이 휴일에도 도청직원들을 서울로 불러 업무보고를 받을 정도로 양측의 밀월관계가 유지되기도 했다.

박 전회장과 김 전위원장의 관계는 유치 이후 조직위원장 선임과정에서 다시 한 번 여론에 회자됐다.당시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유치를 총괄한 조양호 유치위원장과 올림픽지사로 널리 알려진 김진선 당시 특임대사로 압축됐다.한승수 전총리와 박용성 전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변수가 되지는 않았다.조 전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개인적인 욕심보다 국가적 신뢰를 지켜야 한다.주위에서 인정해준다면 영광”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실제 유치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간다는 것은 국제관행상 당연한 수순으로 이해됐고 청와대에도 조 전위원장이 1순위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명박 전대통령의 최종 선택은 김 전위원장이었다.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에서 전국 시도지사 중 유일하게 박근혜 전대통령을 지지한 김 전위원장에게 조직위원장 자리가 돌아갈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이에 대해 조직위에 정통한 한 인사는 “당시 박 전회장과 김 전위원장이 굉장히 가까웠다.박 전회장이 같은 재계 출신인 조 위원장보다는 올림픽 유치를 주관했고 관료 출신인 김 전위원장을 밀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기억했다.마침 당시 청와대에는 두산그룹 계열인 중앙대 총장 출신의 박범훈 교육육문화수석이 정권실세로 중심을 잡고 있을 때였다.박 전회장이 박 전수석을 통해 조직위원장으로 김 전위원장을 밀었다는 얘기가 조직위 내부로 퍼져나갔다.이에 대해 박전회장측은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직후 회장께서는 대한체육회장으로 할 일 다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조직위원장 그런 일은 관심없으셨다.그러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적극 부인했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11년10월4일 공동 발표문을 통해 “김진선 특임대사는 동계올림픽 기획 단계부터 유치 성공까지 어떤 사람보다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다.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평창의 꿈을 가장 현실화할 수 있는 적임자다.조직위원회는 출범 초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데 강원도 출신인 김 대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인선배경을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 전위원장체제는 출범했다.그러나 김 전위원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임명 자체가 아닌 2014년7월 조직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한 이후였다.조직위원장 취임 후 2년9개월만이자 연임을 보장받은 2013년10월 이후 9개월 만이다.김 전위원장이 취임 후 그만두기까지 3년여동안 조직위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 지 아무도 몰랐다.그래서 충격적이었다.그리고 유치부터 3년까지 그 중요한 골든타임이 또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는 것도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됐다. 송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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