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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김해 허씨(金海 許氏)

티베트 유배 충선왕 환국 주도 충신 후예

2003년 04월 28일 월요일
■시조 허염(許琰)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황후(許皇后) 35세손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은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보주태후(普州太后) 허황옥(許黃玉)과 결혼해서 열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둘째아들과 막내아들에게 허씨(許氏)라는 성을 내렸다. 허황후가 임종할 때였다.
 “머나먼 동쪽 나라로 시집와서 대왕을 모시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사오나 그래도 아쉬운 일이 있다면 저의 성(姓)을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로왕은 왕비의 유언을 받아들여 한 아들보다는 아들 둘에게 성을 내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되어 둘째와 막내인 열째아들에게 모성을 따르도록 했다. 홍천군 내촌면에 있는 김해 허씨 재실에 보관 된 문서의 기록에 의하면 막내아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세계를 이었다고 전한다.
 “김수로왕의 10세손이던가, 구해왕이 신라에 나라를 넘기게 됨으로써 가락국(가야)은 망하고 그 자손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지요. 그때 김해에 그냥 눌러 살게 된 후손들은 본관을 김해로 삼아 김해 허씨가 되었고, 하주(河州;지금의 경북 경산시 하양읍)로 옮겨 세거한 후손들은 하양 허씨, 양천에 터를 잡은 허씨들은 양천 허씨, 태인으로 거처를 옮긴 후손들은 태인 허씨가 된 겁니다.”
 지금은 홍천 능평에서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는 허만형 김해 허씨 홍천 종친회장이 자세하게 득관 내력을 설명해 주었다. 허씨 문중과 허씨에서 갈라진 인천 이씨, 양산 이씨도 같은 뿌리라며 자세한 것은 동면의 종친회 사무실로 찾아가서 알아보라고 자세를 낮추었다.
 주유소 밖에는 철늦은 눈이 내려 동면을 찾는 일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김해 허씨가 50%로 자손이 가장 많고, 양천 허씨가 40%, 하양과 태인이 그 나머지를 차지할 겁니다.”
 허효구 김해 허씨 홍천 종친회 총무가 허씨 성 가운데 김해 허씨 후손이 가장 많다는 화제를 앞세우며 문중 내력을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허남설 재무담당이 가끔씩 거들었다.
 “시조 할아버지 허염(許琰) 공은 고려 문종 때 출생하여 삼중대광(문관직으로 정1품)에 오르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다는 간략한 기록만 전해져서 상세한 생몰연대와 행적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영서지역에서는 보통 김해 허씨를 홍천 허씨 또는 인제 허씨라고 부르는데 홍천으로 낙향한 낙향조 어른이 유자전자 허유전 공이 아니던가요?”
 “그 어른은 중시조 할아버지이시지요.”
 필자가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허효구 총무에게 물었다.

김수로왕·허 황후 후손… 기묘사화 때 홍천·인제 은둔

■중시조 고려 충숙왕 때 정승 5세손 시중공 허유전(許有全)
 
 중시조 허유전(許有全)은 고려 고종 30년(1243년)에 태어났다. 원종 15년(1274년)에 등과하고 충렬왕 21년(1295년) 감찰시사로 있을 때 폐신(嬖臣;아첨하여 임금의 신임을 받은 신하)의 무고로 처형될 뻔하기도 했다. 충렬왕 24년(1298년) 국학사예로서 전라도 안렴사가 되고 1307년에는 감찰대부, 지밀직사사가 되어 지공거(知貢擧;과거시험을 담당하던 정3품직)를 겸임했다. 전조시랑을 지낸 뒤 도첨의참(정2품)에 까지 올랐다. 충숙왕 1년(1314년) 가락군에 봉해지고 단성수절공신의 작호를 받았다. 충숙왕 8년(1321년) 수첨의찬성사(정2품)에 이어 정승이 되었다.
 “원나라 토번(吐蕃) 그러니까 요즘 달라이라마가 중국 정부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벌인 티베트로 귀양간 상왕(충선왕)의 환국을 위해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흥군 민지 등과 함께 원나라에 갔었죠. 허나 심양왕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긴 했지만 나라 위해 열정을 보이신 분이 바로 우리 김해 허씨 중시조 유자전자 어른이십니다.”
 허효구 총무가 필자의 시선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아직 대답하지 못한 낙향조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중시조에 이어 6세손 창(敞), 7세손 구연(龜年), 8세손 형(衡)으로 연결되는데, 그러니까 유자전자 허유전 공은 강원도로 낙향한 어른이 아니고. 11세손 희온 희랑 두 어른이시지요. 강원도 깊은 산골마을 홍천과 인제로 낙향한 원인은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 때문입니다.”
 역사적 비극은 9세손 수(銖)와 10세손 지(誌)부터 시작되어 11세 희온(希溫), 희량(希良)에까지 그 여파가 미친 것으로 김해 허씨 홍천 종친회에서 발간한 “숭모사지(崇慕祠誌)”에 나타나 있다.

한말 독립운동가 허겸·허병률, 의병장 허위 배출 명가

■ 기묘사화 때 척신 위해 피해 홍천, 인제로 낙향한 11세손 희온, 희랑 형제
 
 “당시 수 어른은 진사요, 지 어른은 음주부 관직에 계셨으면서도 사후에 묘소마저 없는 것으로 봐서는 기묘사화 때 얼마나 풍파가 심했던지 그때의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지요. 따져보면 그 어른들이 낙향조이지만 묘소도 없고 생몰연대도 정확하지 않아 홍천으로 낙향한 11세손 희온, 희랑 두 어른을 낙향조로 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는 허효구 총무는 깊게 한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문중의 기록이 온전히 보존되어 전해지기는 힘들었을 테고...구전에 의하면 희온과 희랑 두 할아버지는 환란을 피해 강원도 땅으로 낙향하실 때 척신들의 위해를 피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행색을 감추고 가솔들도 여기저기 흩어졌다. 허희온과 그의 아우 허희랑은 우선 홍천 동면으로 피신하여 은거생활을 시작했다. 형세가 불리해졌다. 홍천 관아에까지 어영청 군졸들이 다녀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반역으로 몰리면 3대를 멸하는 법, 두 형제가 한꺼번에 붙잡히면 대를 이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형 희온은 아우 희랑을 인제로 피신시켰다.
 난이 평정되고 3년이 지나도 한번 흩어진 가솔들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희공, 희검, 희양 세 아우들은 그래서 영영 이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정국이 수습되고 죄목이 신원되어 관직을 회복했다. 홍천과 인제로 내려온 낙향조의 후손 12세손들은 정쟁의 비극을 다시는 겪지 않으려고 그대로 홍천과 인제 땅에 눌러앉아 김해 허씨 세계를 이어왔다.
 “홍천군 동면 속초 2리 화곡마을에 유택을 장만하신 낙향조 희온 할아버지는 효동(孝童), 효손(孝孫), 효성(孝誠) 세 아들을 두셨고, 인제읍 덕산리에 묻힌 희랑 할아버지는 냉손(冷孫)이란 아드님 한 분을 두셨는데 얼마나 사화 때 혼쭐이 나셨는지 이런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번에는 재무담당 허남설 이사가 설명해주었다.
 서화담과 황진이, 박연폭포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화담 서경덕 선생과 허효동은 절친한 사이였다. 서경덕이 벼슬을 멀리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은둔거사 허효동을 만나러 왔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홍천 땅에 발을 디뎠을 때는 이미 허효동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서경덕은 한발 늦게 찾은 자신을 원망했다. 상주인 13세손 허세형은 아버지를 만나러 온 서경덕에게 아버지의 묫자리를 봐 달라고 간청했다. 서경덕 어른이 시서는 물론 풍수에도 달인이라는 말을 생전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세천손 자리를 원하느냐 아니면 삼대정승 자리를 원하느냐?”
 상주는 백세천손 자리를 원한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평소 아버지 허효동이 후손이 약하다고 입버릇처럼 뇌이던 말이 떠올랐다.
 “좋은 자리를 버리게 되었구나.”
 서경덕은 삼대정승 자리를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사화 때 집안이 흩어져 후손이 약하다는 아비의 유훈을 따른 묘소가 지금 홍천군 동면 성수리에 있다.
 “백세천손 자리에 효동 어른의 묘소를 써서 그런지 낙향조 이후 5천 세대를 넘게 문중 식구들이 늘어났습니다. 사화 때 우리 선조들이 당한 쓰라린 아픔 때문인지 지금도 우리 허씨들은 진취적이기보다는 온후하고 순박한 편이지요. 허씨 문중 가운데 초·중등학교 교장을 지낸 인물들이 백여 명은 될 겁니다.”
 허효구 총무가 족보를 덥고 따로 적어놓은 기록을 펴보이며 말했다.
 근대에 들어와 가문을 빛낸 인물은 독립운동가 허겸, 허병률, 의병장 허위 등이 있고 현대에 들어서 가문의 위상을 높인 사람들로는 허정 전 국무총리, 허명구 강원학원 설립자, 허필국 전 서울체신청장, 허종구 전 강원고등학교장, 허남성 국방대학원 교수부장, 허범량 진흥청 연구실장, 허만영 전 평창경찰서장, 허만수 김화중고등학교장, 허만겸 전 철원 농협지부장, 허남열 횡성 농협조합장, 허응구 원주시 의원, 허을영 허필홍 홍천군 의원, 허만석 춘천 관리공단이사장, 허정량 전 초등학교장, 허선 연역 공군 중령, 허혁구 홍천군 의회 의사과장, 허남욱 강원대학교 교수, 허승구 홍천 좌운초등학교장, 허만봉 도교육청 장학관 등이 있다.

■ 도움말 주신 분
허만형 김해 허씨 홍천종친회장. 허원구 전 인제종친회장. 허남설 홍천종친회 재무이사. 허우봉 홍천종친회 이사. 허남규 홍천종친회 이사.

 글/사진 소설가 최 종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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