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탄특공대, 적 융단포격 뚫고 홍천 수호
박격포탄 1발·수류탄 2개 전부
북한군 전차 17대 폭파 전과

▲ 육탄용사전적비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를 기해 전면 남침한 북한군은 제 2, 7사단을 홍천에 투입했다.

이 부대는 이천과 수원으로 우회, 국군의 주력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3일작전’으로 명명됐다.

당시 국군은 춘천에 6사단 7연대를, 홍천에 6사단 2연대를 배치한 뒤 적과 맞섰다. 그러나 SU-76자주포와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 2사단의 파상공격은 거셌다.

105㎜자주포가 전부인 국군은 전차를 앞세운 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특히 홍천을 공략하기 위한 북의 공격은 거셌다.

홍천은 북으로 춘천~화천, 남으로 횡성~원주, 동으로 인제~양양, 서로 양평~서울 등이 곧바로 연결되는 중동부지역의 요충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워 말고개 일대를 융단포격하며 돌진했다.

이 때 민병권 대령은 육탄공격으로 북한군의 주 무기인 전차를 파괴하기로 결정, 김학두 하사와 양학진 하사, 조달진·원근호 용사 등 11명의 육탄특공대를 선발했다.

81㎜ 박격포탄 1발과 수류탄 2개씩을 지급받은 특공대원들은 홍천군 화촌면 주음치리 인근 말고개 굽잇길에 매복해 있다 북한군의 전차에 뛰어올라 해치를 열고 수류탄을 집어 넣어 적 전차를 파괴했다.

개전 초 최대의 전차 격멸전이었던 이 전투에서 특공대는 육탄으로 적 전차를 공격하는 용맹과 투지를 발휘, 적 탱크 17대를 폭파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특히 이 전투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는 동시에 낙동강 방어전선 구축과 인천상륙작전 등 반격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휴전협정 후 홍천군민들은 고향과 나라를 지켜낸 육탄특공대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성금을 모금, 홍천군 화촌면 주음치리 말고개 중앙지점에 육탄용사 전적비를 세웠다.

전적비에는 ‘피땀에 젖은 장병들의 혈투사는 불후의 무공으로서 길이 남을 것이다’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정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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