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년 특별기획 - ① 강원도의회
>>>지방의회 30년만에 부활
1987년 6월 민중항쟁 결실 도내 수복지구 첫 지방선거
>>>3대 강원도의회 출범
54명 구성 과반 이상 여당 최고령 75세·최연소 30세
>>>3대 강원도의원 행적
국회의원 지자체장으로 왕성한 정치활동 이어가
[강원도민일보 정승환 기자]강원도를 비롯한 각 지역의 숙원이었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32년 만에 국회를 통과,진정한 지방자치·자치분권 시대를 맞게 됐다.개정된 지방자치법은 2022년부터 전면 시행된다.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산됐던 지방의회가 1991년 재출범한지 꼬박 30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강원도민일보는 올해 지방자치제 부활 30주년 기념 및 지방자치법 개정안 전면 시행을 앞두고 현 지방자치제도의 원년이 된 1991년 제3대 강원도의회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강원도의회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30년 간 중단기를 맞았었다.당시 군사혁명위원회는 포고령을 통해 전국 지방의회를 해산,제2대 강원도의회(1960.12.12∼1961.5.15)는 출범한지 6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이로써 완전히 소멸됐던 지방자치제는 1980년대 말이 돼서야 부활의 물꼬를 트게 됐다.지방자치의 부활은 1987년 6월10일 민중항쟁의 결실로 비롯된 6·29선언이 계기가 됐다.6·29선언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및 1988년 평화적 정부이양 외에 지방자치제,교육자율화실시 등 8개항이 담겼다.이후 제12·13대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현 지방자치법의 틀이 마련됐다.
지방자치제의 실질적인 부활을 알리는 지방선거는 1991년을 맞아 재개됐다.당시 지방선거는 3월 기초의회·6월 도의회로 나뉘어 실시됐다.지방자치제 부활 이후,첫 지방선거인 시·군의회 선거는 그 해 3월 26일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됐고,4월 24일 각 시·군의회가 공식출범했다.특히 강원도의 경우,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양양 등 수복지구 7개 시·군에서 사상 최초로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도내 전 지역에 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된 첫 해로 기록됐다.강원도의회 의원 선거는 같은 해 6월 20일 실시됐으며,7월 8일 개원식을 통해 제3대 도의회가 공식 출범했다.이에 따라 1961년 군사정변으로 중단된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현재 지방자치제의 원년이 됐다.
제3대 강원도의회는 모두 54명의 의원으로 구성됐다.당시 선거구는 인구 및 행정구역 등을 고려해 시군을 분할했는데 인구 7만 미만 시군은 2명,7만 이상∼30만 미만의 시군은 3명의 의원을 두도록 규정함에 따라 도내 선거구는 총 54개로 정해졌다.따라서 춘천·원주·강릉·동해·태백·속초·삼척(군)·홍천·정선·명주 등 10개 시군은 3명의 지역구 의원을 뒀다.춘성·횡성·원주·평창·철원·화천·양구·영월·인제·고성·양양·삼척(시) 등 12개 시군은 2명의 지역구 의원을 선출했다.춘성·원주·명주·삼척군은 지금은 춘천·원주·강릉·삼척시로 각각 통합됐다.
1991년 6월 20일 강원도 광역의원 선거결과,제3대 도의회는 당시 여당이자 보수정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이 34명의 의원을 배출하며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다.야당인 민주당과 민중당은 각각 1명의 의원을 배출하는데 그쳤고 무소속 의원이 18명이었다.
연령별로는 50대가 22명으로 가장 많았다.이어 40대가 20명으로 뒤를 잇는 등 40∼50대 중장년층이 절대 다수였다.60세 이상은 7명,30대는 5명에 불과했다.20대는 단 한명도 없었다.최고령자는 민주자유당의 최경식(당시 75세·동해) 의원이었으며 최연소자는 무소속 정충수(당시 30세·화천)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여대야소 구조 속에 제3대 도의회 의장은 전후반기 모두 최경식 의원이 차지했다.전반기 당시 부의장 2석과 내무·교육사회·건설·산업·의회운영위원회 등 5개 상임위원장도 민주자유당이 전석을 석권했다.후반기에 무소속 김형재(영월) 의원이 부의장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6석 모두 민주자유당이 가져갔다.
여대야소 구조는 3대 도의회 임기 내내 지속됐다.특히 1992∼1993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8개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가 진행된 가운데 민주자유당의 의석수는 기존 34석에서 35석으로 1석 더 증가했다.
8개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를 통한 제3대 도의회 추가 입성을 통해 3대 도의회는 총 62명 의원들이 거쳐갔다.2021년 1월 현재,생존 의원은 27명 뿐이다.30년의 긴 세월이 지났지만 일부 인사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중앙과 지역정치권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제3대 도의원 중 유일하게 여의도로 진출한 허천 전 국회의원은 17·18대 국회에 입성,강원도의 수부도시 춘천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했다.1991년 춘성군 도의원으로 당선,정치계에 입문한 허 전 의원은 이후 4·5대까지 연달아 도의원에 당선됐고,제5대 도의회에서는 의장을 지냈다.3∼5대까지 3선 도의원을 지내며 정치적 입지를 키워나간 허 전 의원은 2004년 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춘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금배지를 달았다.4년 뒤,18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류종수 후보를 3000여표차 이상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했다.
도의원 경력을 발판 삼아 기초단체장에 당선된 이들도 있다.정계항 전 의원의 구속에 따른 횡성군 도의원 보궐선거(1993.11.12)에서 당선된 조태진 전 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곧바로 체급을 높혀 기초자치단체장에 올랐다.그는 도의원에 당선된지 1년 6개월만에 열린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횡성군수 선거에 출마,당선됐다.이후 2002년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하며 민선 1∼3기 군수로 재임했다.
정상철(양양) 전 의원은 3∼4대 도의원을 역임한 뒤 2011년 양양군수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그는 재선 도의원을 지낸 직후 1998년부터 군수선거에 나섰지만 모두 낙마,2011년 보궐선거에서 4수 끝에 당선됐다.
이밖에 이영구(고성) 전 의원과 이기순(인제) 전 의원도 각각 기초단체장에 이름을 올렸다.다만 이들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중도 낙마,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이영구 전 의원은 초선 도의원을 지낸 직후 민선 1기 고성군수가 됐지만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39세에 3대 도의회에 입성한 이기순 전 의원은 7대까지 내리 5선을 지낸 뒤 2010년 인제군수에 당선됐지만 이듬해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했다. 정승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