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요즘에] 가을장마에 멈춰 선 수확의 손길

▲ 최종태 국립경상대 겸임교수 전 강원도농업기술원장
▲ 최종태 국립경상대 겸임교수 전 강원도농업기술원장

올해 정선의 들녘은 유난히 길고 잦은 가을장마에 멈춰 서 있다. 한가위 연휴를 시작으로 며칠씩 이어지는 비와 흐린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농심은 깊게 타들어 가고 있다. 수확철을 맞은 정선의 사과는 착색이 불량하고 표면에 갈라짐이 생겨 상품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감자·수수·잡곡 등 주요 밭작물도 습해와 병충해로 수확량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일조량 부족으로 작물 생장이 더디고 저장성까지 떨어지면서 농가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이번 가을장마는 단순한 날씨의 변덕이 아니다. 예년보다 길어진 강우일수와 국지성 폭우로 인해 농작업 일정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습한 날씨가 길어지면서 곰팡이병, 잎마름병 등 병해충이 급격히 확산되고,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밭에서는 뿌리 썩음과 낙과가 늘고, 심하면 수확전에 싹이 날 수도 있다. 빗물에 씻겨 내려간 양분은 비료 효과를 떨어뜨리고, 농기계조차 진입하기 어려워 수확 시기를 놓치는 일도 빈번하다.

정선은 그동안 큰 일교차와 깨끗한 공기를 바탕으로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후 변화로 인해 봄에는 냉해, 여름에는 폭우, 가을에는 장마가 이어지며, 고랭지 농업의 강점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농업이 기후의 변덕에 흔들리는 현실은 정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농촌 전반이 마주한 구조적 위기다.

이제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배수로 정비와 토양 관리가 시급하다. 포장마다 배수로를 확보하고, 유기물과 피복 작물을 활용해 토양의 통기성과 배수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병해충 방제 강화가 필수적이다. 장마철에는 곰팡이성 병이 급속히 번지므로 조기 예찰과 예방 중심의 방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농작물 재해보험의 실질적 보완도 절실하다. 기형과나 낙과 피해가 커도 보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여전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현실적인 보상 기준을 마련하고, 보험 가입률을 높여 농가의 경영 안정을 지원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정밀농업 기술과 기상정보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토양·습도 센서, 자동 배수 시스템을 활용해 피해를 사전에 줄이고, 내습성과 내병성이 강한 품종을 적극 개발·보급해야 한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농업기술 교육과 공동 대응 체계도 강화되어야 한다.

정선의 농작물은 해발 500m 고랭지의 맑은 공기와 큰 일교차가 만들어낸 정직한 결실이다. 그러나 이제 농업은 ‘날씨를 기다리는 농사’가 아니라, ‘기후에 대응하는 농사’로 바뀌어야 한다. 농업도 이제는 과학이다. 기후 위기 앞에서 농업은 더 이상 자연의 변덕을 탓할 수 없다. 가을장마가 남긴 상처를 교훈 삼아, 정선의 들녘이 다시 풍요를 되찾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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