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수요광장] 절제를 잃은 수도권, 균형을 잃은 대한민국

▲ 류종현 강원대 객원교수 상지대 특임교수
▲ 류종현 강원대 객원교수 상지대 특임교수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수도권은 여전히 팽창을 멈추지 않는다. 본래 목적이던 과밀 억제와 국토 균형발전은 실종되고, 제도는 형식만 남았다. 오늘의 수도권정비정책은 억제가 아니라 조건부 합리화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2024~2025년 수도권정비실무위원회 심의 결과를 보면 전체 안건의 절반 이상이 조건부 의결로 처리된다. 교통혼잡 완화, 상하수도 용량 확보 등 조건은 매번 반복되지만, 이행 여부를 검증하는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수도권은 무제한 팽창을 정당화하고, 비수도권은 산업과 인구를 잃으며 국토의 불균형은 심화된다.

이러한 현실은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균형성장전략(5극3특)의 핵심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5극3특은 다핵형 국토전략을 지향하지만, 수도권정비정책은 여전히 수도권의 성장수요를 조건부 승인 방식으로 관리하며 비수도권의 기능을 흡수한다. 그 결과 수도권은 과밀·교통혼잡·환경부하가 심화 되고, 지방은 청년유출·산업 공백·재정 불균형이라는 삼중고를 겪는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는 수도권 팽창의 구조적 피해를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수도권 전력 소비의 절반 이상을 강원·충청 발전시설이 공급하고, 수도권 상수원의 60% 이상이 강원 상류 지역에서 온다. 그러나 강원은 상수원 규제와 환경보전 부담 속에 신규 산업 입지가 제한된다. 수도권은 더 많은 공장과 도시개발을 승인받지만, 강원은 에너지와 물을 공급하는 지역으로만 남는 비대칭적 공존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조건은 있으나 관리가 없는 제도다. 심의 조건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데이터베이스나 성과평가 지표(KPI)가 없어, 조건부 의결 → 미이행 → 동일 조건 반복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는 수도권 개발을 단순 승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력·물·교통·정주 여건을 정량화한 수용성 지표제(Capacity Index)를 도입해야 한다. 수용성을 초과한 지역의 신규 사업은 제한하고, 비수도권 대체 입지나 상쇄 대책이 마련될 경우에만 승인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수도권 개발이익의 일정 비율을 비수도권에 재투자하는 균형발전 리턴제(Return System) 도입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수도권 성장의 외부효과를 조정하는 공정한 제도다. 영국은 그린벨트를 유지하며 성장거래(Growth Deal)를 통해 억제와 대체공급을 병행하고, 독일은 연방-주 간 재정조정을 통해 다핵형 균형체계를 구축했다. 한국 역시 수도권-비수도권 간 공간적·재정적 상호보상 메커니즘을 제도화해야 한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이러한 새로운 균형성장전략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춘천의 AI·바이오, 원주의 반도체·바이오헬스, 영월의 전략광물, 동해안의 북극항로 산업은 수도권의 보완축이 아니라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선도축이 되어야 한다. 수도권정비정책이 지금처럼 수도권 중심의 합리화 수단으로 남는다면, 강원은 영원한 공급지로 머물 것이며 국토의 균형은 회복될 수 없다.

균형발전은 지방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생존 전략이다. 수도권의 절제가 곧 지방의 기회이며, 지방의 도약이 수도권의 미래를 지탱한다. 이제 수도권은 스스로 성장의 한계를 설계해야 한다. 수도권이 멈추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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