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요즘에] 숲과 함께한 늦깎이 배움의 여정

▲ 최종기 수필가
▲ 최종기 수필가

지난 3월, 지인의 소개로 숲해설가 교육과정에 응시하게 되었다. 교육 첫날, 오리엔테이션 시간. 마지막 순서로 내 차례가 되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올해 나이 80입니다”라고 소개하자, 교육생들이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교육생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교육원 담당자가 교육과정을 소개했다. 총 182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과목당 50점 이상, 평균 70점 이상을 받아야 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걱정이 태산 같았다. 농사도 지어야 하고, 사회활동도 해야 하는 가운데 교육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모르던 지식들이 하나둘 쌓여가며 숲을 보는 눈높이가 달라졌다. 식물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고, 산은 어디에 있고 흙은 어디서 왔는지,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옮기는 ‘자연의 배달부’라는 사실, 청설모와 다람쥐가 열매를 옮겨 식물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것 등,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들의 고향도 다양했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텃새, 북쪽에서 겨울에 찾아오는 겨울철새, 남쪽에서 봄에 오는 여름철새, 잠시 들렀다 가는 나그네새, 기상 변화로 길을 잃고 밀려온 미조까지. 점점 더 공부에 빠져들었다.

현장 실습이 시작되면서 지정된 장소마다 상주하는 선배 숲해설가의 지도를 받았다. 실습이 끝나면 일일교육실습일지, 프로그램 계획서, 현장 사진, 교육 소감문 등 다양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복잡한 양식에 부담을 느껴 포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게다가 실습 후에는 시연 계획도 있고, 평가 시험도 있어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농장 일까지 겹쳐 책상에 앉으면 졸음이 쏟아지고, 중요한 내용을 외우려 해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시험 날이 다가왔다. 아침 일찍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비가 내렸다. 도립 화목원 주차장에 도착해 시연 장소로 향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빗물에 젖은 구두의 뒤축이 양쪽 다 떨어져 나간 것이다. 신발을 갈아신을 시간도 없어 망가진 구두를 그대로 신고 시연 장소로 향했다. 양복 바지를 내려 구두창을 감싸보았지만, 뒤축이 자꾸 빠져나와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노력을 헛되게 할 수 없어 꾹 참고 시연을 마쳤다.

오후엔 평가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 종료 20분 전, 예령이 울렸다. 마음이 급해졌지만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갔고, 겨우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 수료증을 받아보니, 합격이었다. 나이 80세에 기적 같은 인생사. 이번 시험과 자격증 취득은 아마도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너무도 감동스럽고,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고이 간직될 것이다. 진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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