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독감이 찾아왔습니다. 문도 두드리지 않고 불쑥 들이닥치는 이 손님은 늘 그렇듯 예의는 없지만, 말이 많은 존재입니다.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서 몇가지를 깨닫습니다. 머리가 띵하게. 우리 사회도 어쩐지 이 독감 바이러스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요.
독감에 걸리면 몸은 금세 알아차리죠. 열이 오르고, 기운이 빠지고, 어딘가에서 경고등이 깜빡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정작 마음의 열에는 무척 둔감합니다. 분노가 38도쯤 올라가도 “괜찮습니다”라는 자동응답을 내놓고, 피로가 축적돼도 “아직 버틸 만해요”라고. 독감은 이렇게 솔직하게 몸살을 내는데, 우리는 왜 감정을 숨기며 살아가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 병원 대기실에서는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겹치며 묘한 합창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정작 그 혼잡 속에서도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일은 참 자연스럽습니다. “저사람 힘들어 하는데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라는 말보다 “얼른 내 차례나 왔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 드는 건 솔직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이러스는 빠르게 퍼지는데 정작 우리의 배려는 참 느리기만 합니다. 확산은 순식간인데, 이해와 양보는 왜 그리 굼뜬지요. 한 사람이 기침을 하면 다들 숨을 참지만, 누군가 지쳐 보일 때는 마음의 거리두기를 좁히려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거리두기를 하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거리를 좁혀야 하는데도 그렇습니다.
독감이 오히려 한 수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몸은 쉬어야 낫고, 사회는 멈춰야 보이며,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봐야 비로소 따뜻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독감은 언젠가 지나가지만, 우리가 서로를 방치하는 마음의 냉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독감에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붙여보고 싶습니다. 아프게 하니 미워할 수도 있지만, 덕분에 잊고 살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처럼, 사회 역시 때로는 경고음을 울립니다. 그 음성을 외면하지 않고 들을 수 있다면, 이번 독감철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