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는 결코 화려한 빛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갱도 깊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 일했던 수많은 산업전사들의 땀과 희생이 있었다. 이 나라의 공장과 도시를 움직인 에너지의 근원에는 바로 ‘석탄’과 ‘광부’가 있었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광부의 날’ 제정은 단순히 기념일 하나를 만드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지난 세기 산업화 시대의 기반이 되었던 탄광과 그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헌신을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폐광지역’이라 불렸던 지역들의 새로운 이름, ‘석탄산업전환지역’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동안 ‘폐(廢)’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도계·태백·정선·영월 등 석탄도시들은 늘 ‘사라진 산업’, ‘쇠퇴한 지역’의 상징처럼 취급 되어왔다. 그 속에서 시민들은 “우리는 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야 하느냐”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그러나 ‘광부의 날’ 제정 논의는 이러한 흐름을 바꾸는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국가가 과거의 희생을 인정하고 기억하려 할 때, 비로소 지역의 자존심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석탄산업전환지역은 더 이상 ‘폐광’이라는 단어로 정의될 수 없다. 이곳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토대를 만든 명예로운 산업의 요람이며, 누군가의 청춘과 생명을 바쳐 이 나라의 성장을 지켜낸 역사적 현장이다. 그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이며, 지역의 미래전환정책 또한 이 위에 세워져야 한다.
삼척 도계를 비롯한 전환지역들은 지금 에너지 전환, 산업 구조 재편, 청년 일자리, 공공인프라 확충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그 과정속에 ‘명칭’과 ‘기념일’이 갖는 상징적 힘은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는 버려진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을 떠받친 주역이었다”는 강한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광부의 날 제정은 바로 그 상징의 회복이며, 석탄 산업전환지역의 미래 전환을 위한 정신적 기반이다. 과거의 희생을 존중하는 나라만이 미래의 책임을 말할 자격이 있다.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는 진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광부의 날’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만 논의되는 이례적 기념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군인의 날, 소방의 날, 산업안전보건의 날, 해양수산인의 날처럼 국가 기반을 지탱한 직업군의 헌신을 기리는 법정기념일들이 여럿 존재한다. 에너지가 국가 경제의 뿌리였던 시절, 가장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산업화를 떠받쳤던 광부들의 노고는 이러한 기념일들과 성격이 정확히 일치한다.
이제 국가는 ‘광부의 날 제정’과 함께 석탄산업전환지역을 단순한 보상이나 지원의 대상이 아닌, 대한민국 산업사의 중요한 주체로 대우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산업화 시대의 희생에 대한 가장 정당한 보답이며, 지역 주민들이 다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자존심을 세워주는 길이다.
광부의 손등에 새겨진 굳은살, 그 속에 깃든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는 하루. ‘광부의 날’은 그들의 삶을 기리는 날이자, 석탄산업전환지역의 자부심을 세우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