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원도심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전통시장과 골목은 이제 빈 점포와 줄어드는 유동인구로 채워지고 있다. 번개시장 상인회장으로서 매일 시장의 흐름을 체감하는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원도심은 책상 위에서 만든 계획만으로는 절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현재 원도심을 둘러싼 논의는 ‘도시재생이냐, 재개발·재건축이냐’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논쟁은 정작 중요한 본질을 가리고 있다. 개발 방식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원도심의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 하는가?” 단 하나다. 원도심의 쇠퇴는 생활권 이동, 소비 패턴 변화, 주거 인프라 한계, 상권 간 경쟁, 문화적 매력 약화 등 복합적 요인의 결과다. 따라서 도시재생만으로도, 재개발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해법은 ‘방식’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있다. 어디는 지켜야 하고, 어디는 새로 만들어야 하며, 어디는 기존 생활문화를 복원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부터 세워야 한다.
전통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시장을 운영하며 얻은 결론이 있다. 외형만 바꿔서는 절대 살아나지 않는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시민의 발걸음, 참여, 체류, 그리고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번개시장은 다양한 실험을 이어왔다. 그중 하나가 ‘노래자랑’을 중심으로 한 야시장 프로그램이다. 지난 5개월간 시민들이 보여준 높은 참여와 열기는 원도심이 아직 살아 있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사람이 모이면 상권이 살고, 상권이 살면 도시가 다시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있다. 번개시장 안의 작은 문화공간, ‘번개극장’이다. 번개극장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시낭송, 작은 공연, 토론, 교육 등이 열리는 복합 문화 플랫폼이다. 무대와 객석이 완벽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이곳에서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지역 문화와 관계가 교차하는 거점이 된다. 번개극장이 원도심 정책의 중요한 실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전통시장 안에 이러한 문화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원도심이 여전히 도시의 ‘문화적 심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춘천은 서울이 아니다. 흔히 서울의 원도심 개발 사례를 들며 “도심을 잘 개발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몰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울은 애초에 사람이 많다. 개발이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으니 개발이 성공한 것이다. 반면 춘천은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흐름 속에 있다. 이런 도시에서 원도심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인구가 늘지는 않는다. 더욱이 원도심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불쑥 들어서는 개발 방식은 도시 경관 훼손, 생활권 단절, 전통시장과의 이질감, 원도심 이미지 왜곡과 같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전통시장 중심 생활권은 ‘연결성·연속성·보행성’이 핵심인데, 이를 끊어버리는 개발은 원도심의 장점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결국 원도심 활성화의 핵심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이동과 체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무엇을 짓느냐보다 사람이 머물 이유를 만드는 것, 춘천의 원도심 논의는 이제 “무엇을 지을까”에서 “누가, 어떻게 모이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전환돼야 한다.
번개극장과 같은 작지만 의미 있는 문화적 성공이 도시 곳곳으로 번져나갈 때, 원도심은 비로소 자생력을 되찾을 것이다. 원도심을 살리는 일은 건설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춘천의 원도심은 아직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