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요즘에] 맛의 인문학

▲ 우승순 수필가
▲ 우승순 수필가

바야흐로 맛의 전성시대다. 배가 고파 먹는 것이 아니라 맛을 위해 먹는 맛 세상이다. 소위 ‘먹방’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송되고,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의 별난 식재료와 별미 음식들이 다양한 조리 방법과 함께 소개된다. 맛집, 맛지도, 맛여행 등 맛의 문화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건강식품의 관심을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상업적인 입맛에 길들여지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배고픈 시절도 아닌데 왜 이토록 먹는 것이 주요 관심사가 되었을까?

인간은 본능을 쾌락으로 발전시키는 별난 동물이다. 식욕과 성욕이 그렇다. 식욕은 본능이지만 맛은 쾌감을 유발한다. 세치 혀가 요사스럽기로는 말을 할 때와 맛을 볼 때다. 상업적인 입맛에 길들여지면서 곰삭은 세월의 맛이나 재료 본연의 고유한 맛보다는 가공하여 조작된 맛에 끝없이 내몰린다.

맛은 순간의 즐거움이다. 산해진미도 삼키는 순간 사라진다. 만약 음식이 소화되고 흡수되는 동안 다른 장기에서도 계속 맛을 느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무섭다. 입속의 그 짧은 쾌감을 위해 인류는 엄청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투입해왔다. 그러나 맛의 진정한 컨트롤 타워는 혀가 아니라 마음이다. 같은 음식도 기분 좋을 때와 슬플 때의 맛이 다르고, 화가 나면 단 음식도 쓰디쓰다. 그러므로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먼저 ‘감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소박한 음식일지라도 내 앞에 오기까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도왔고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이 담겼다.

맛은 건강에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맛의 중심에는 과량의 설탕과 소금과 기름기가 있기 때문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영양실조를 걱정했지만 요즘은 비만이 일반화되었고 다이어트가 거대한 산업으로까지 발전했다.

과잉의 맛은 지구의 건강도 해친다. 굳이 안 먹어도 되는 지구 반대편 식재료의 수입을 위해 가공, 냉동, 포장, 수송 등에서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음식쓰레기의 양도 상상을 초월하고 그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다시 돈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나 지구촌 한편에서는 원조되는 우유 한 컵으로 하루, 하루 생명을 이어가는 깡마른 어린아이도 있다.

생명유지가 아닌 맛을 위해 먹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음식을 익혀먹고 맛나게 요리하는 것은 지혜이고 행복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에 편승한 상업화는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더 편하고, 더 빠르고, 더 맛있는’ 슬로건을 내걸고 끝없는 경쟁을 부추긴다. 욕망은 채울수록 허기진다. 지금 정도면 충분히 맛있는 맛 세상이다. 돌아갈 수 없다면 이쯤에서 멈춰도 되지 않을까? 이대로 가다가는 세치 혀가 지구도 삼킬 기세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추천 많은 뉴스
지금 뜨고 있는 뉴스
강원도민일보를 응원해주세요

정론직필(正論直筆)로 보답하겠습니다

후원하기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후석로462번길 22, 강원도민일보사(후평동 257-27)
  • 대표전화: 033-260-9000
  • 팩스: 033-243-7212
  • 법인명: (주)강원도민일보
  • 제호: 강원도민일보
  • 사업자등록번호: 221-81-05601
  • 등록번호: 강원 아 00097
  • 등록일: 2011-09-08
  • 창간일: 1992-11-26
  • 발행인: 김중석
  • 편집ㆍ인쇄인: 경민현
  • 미디어실장: 남궁창성
  • 논설실장: 이수영
  • 편집국장: 이 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김동화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