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의정칼럼] 보여주기식 행정 넘어 실질적 대응으로

▲ 윤길로 강원도의원
▲ 윤길로 강원도의원

매년 반복되는 외래식물 제거 행사는 요란하지만, 정작 우리의 산과 들은 낯선 식물에 잠식되고 있다. 행정은 퇴치사업을 외치지만, 현장은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된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이 뒤덮고 있다. 강원도의 생태계는 지금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무너지고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는 이 침식은 환경 미화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터전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경고다.

여행과 무역의 확산으로 외래식물의 국내 유입은 급격히 늘었고, 그 위협은 단순히 ‘잡초’의 문제가 아니다.

단풍잎돼지풀은 하루 만에 수천 개의 꽃가루를 퍼뜨려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가시박은 하천과 농경지를 뒤덮어 토종식물의 생육 공간을 빼앗는다. 영월·정선·평창 일대에서는 이미 두 종이 하천 생태계를 따라 대규모 군락을 이루며 토종식물군락이 사라지고 있다. 강원도의 숲과 강, 들판을 ‘조용히 점령’하고 있다.

이러한 침입은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녹색 재난이다. 유엔 산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간 과학정책 플랫폼’ 보고에 따르면, 외래종으로 인한 전 세계 경제적 피해는 2019년 기준 연간 4230억 달러, 약 560조원에 달한다.

강원도 역시 매년 1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외래식물 퇴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관·군이 참여하는 합동 제거행사, 생육 시기별 집중 제거, 전문 용역, 대체식물 식재 등 다양한 방식이 추진되고 있지만 결과는 미흡하다. 외래식물의 확산 속도에 비해 예산과 대응 체계가 턱없이 부족하다.

현행 퇴치사업은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사후 모니터링과 재발 방지 체계도 미흡하다. 또 행정이 ‘보여주기식’에 머무르다 보니 제거 효과는 일시적이고, 외래식물 확산이 반복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원도가 외래식물의 정확한 분포 현황이나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퇴치 방안과 추진 전략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외래식물 퇴치는 단순 제거 사업이 아니라 생태계 회복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돼야 한다.

첫째, 도 차원에 ‘외래식물 대응TF’를 설치하고, 국립생태원의 조사와 별도로 지역별 서식 현황과 확산 경로를 상시 모니터링하며 데이터 기반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천변·도로변·휴경지 등 서식 유형별 분포를 과학적으로 기록하고, 신고 시스템을 병행해 실시간 관리망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단순 인력동원 방식에서 벗어나 ‘수매사업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주민이 제거한 교란식물을 지자체가 수매하면 사업 효율성과 참여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셋째, 외래식물 제거를 ‘생태 돌봄형 일자리’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 참여해 제거 실적에 따른 포상금제·인증제를 운영하고, 제거된 식물을 퇴비·바이오연료·공예자재 등으로 재활용하는 산업 연계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단순 제거에서 나아가 토종식물 복원·하천 복구·생태 네트워크 회복을 병행해야 한다. 제거 후 방치된 토지에는 지역 특성에 맞춘 토종 대체식물 식재를 추진하고 이를 생태관광·명소화 사업으로 확대해야 한다.

외래식물 퇴치는 단순히 ‘잡초 뽑기’가 아니다, 후손에게서 잠시 빌려 쓰는 환경을 지켜내는 일이며, 행정의 의지와 주민의 참여가 함께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토종 식물이 다시 강원도의 들과 산에서 힘차게 뿌리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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