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73세까지 일해야 산다”…한국 노인들, OECD서 가장 오래 일한다

소득 공백·낮은 연금 급여로 생계형 근로

▲ 2025 하남시 일자리박람회에서 고령 구직자가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2025 하남시 일자리박람회에서 고령 구직자가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노인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늦게까지, 가장 많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높은 고용률의 이면에는 ‘일하는 즐거움’보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민연금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과 은퇴 후 연금 수령까지 이어지는 소득 공백기,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가 고령층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국민연금연구원 오유진 주임연구원의 ‘국민연금과 고령자 노동 공급’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20.3%에 이르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주목할 점은 65세 이상 고용률이 2023년 기준 37.3%로 OECD 평균 13.6%를 크게 웃돌며 회원국 1위를 기록한 사실이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25.3%)보다도 훨씬 높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한국 고령층이 희망하는 근로 연령은 평균 73.4세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을 계속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 보탬을 위해서’가 54.4%로, ‘일하는 즐거움’(36.1%), ‘무료함 달래기’(4.0%)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보고서는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턱없이 부족한 공적연금 수준을 꼽았다. 2024년 기준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약 66만원으로, 1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 134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구 국가들이 연금만으로도 은퇴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인 것과 달리, 한국은 연금을 받으면서도 일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법적 정년과 실제 퇴직 연령의 괴리에서 오는 소득 공백기다. 현행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주된 일자리에서의 평균 퇴직 연령은 2025년 기준 52.9세에 불과하다.

반면 국민연금 지급 개시는 1961∼64년생 63세, 1969년생 이후부터는 65세로 늦춰지고 있다. 직장에서 물러난 뒤 연금을 받기까지 최소 10년 가까이 ‘보릿고개’를 견뎌야 하는 셈이다.

보고서는 연금 수급 연령 상향이 재정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당장 고령층에게는 생계 유지를 위해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강한 유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현행 연금 제도의 모순도 지적됐다. 고령자 고용 확대를 강조하는 정부 정책과 달리 국민연금에는 일정 소득(2025년 기준 월 308만원)을 넘으면 연금액을 최대 50%까지 깎는 ‘노령연금 감액제도’가 존재한다. 이는 “일하면 손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다만 보고서는 해당 제도가 고소득자에 제한적으로 적용돼 실제 고령층 전체의 노동 참여를 저해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대다수 노인은 감액을 감수하고서라도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연금 수급을 늦출 경우 연 7.2%씩 연금액을 증가시키는 ‘연기연금 제도’는 고령층 노동 공급을 늘리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건강이 허락하고 일자리가 있다면 당장의 소득보다 향후 더 많은 연금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연구원은 해외 연구들이 “공적연금은 근로 감소와 조기 은퇴를 유도한다”고 결론 내린 것과 달리, 한국은 연금 급여 수준이 낮아 연금 수급 여부가 은퇴 결정의 핵심 요인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국 고령층은 연금을 받아도 일해야 하고, 연금을 받기 전에도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보고서는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고령층 노동력 활용이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단순히 정년 연장 논의를 넘어서 50대 초반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개선하고, 연금 수급 전 소득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기업에 70세까지 고용 확보 의무를 부과해 고령층의 안정적 고용을 유도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살기 위해’ 일하는 노인이 아닌 ‘안정된 노후’ 위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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