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비서관 지낸 徐用和 교수(강릉대)

 "전국을 호령한 주먹왕이었던 만큼 무서운 사람일 것이라는 일반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항상 경어를 쓰는 등 품격을 갖춘데다 의협심이 강해 바른 길을 가려고 부단히 노력한 정치인이었습니다”
 60년대 국회의원 金斗漢의 비서로 활동한 강릉대 徐用和 대학원장(64·철학과 교수)은 최근 '긴또깡’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SBS TV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 義松 金斗漢에 대해 이같이 회상했다.
 지난 60년 대학생으로 활발한 학생운동을 펼치며 4·19를 주도했던 徐교수는 61년 5·16을 거치며 군대를 제대한 후 63년 대학원생으로 한독당 당무위원을 맡고 있었다.
 당시 한독당적을 갖고 종로에서 출마해 선거운동과 정책을 입안할 엘리트를 필요로 하던 金의원에게 비서로 픽업된 이후 徐교수는 지난 72년까지 10여년간 분신처럼 따라다니며 핵심 참모로 일했다.
 徐교수는 이 때부터 한 시대를 풍미한 金의원의 독특한 정치역정에 영향을 끼친것은 물론, 金의원에게 골재 회사를 만들도록 해 직접 전무를 맡아 정치·생활자금을 확보하는 등 金의원의 말년 삶과도 궤적을 같이 했다.
 특히 그는 지난 66년 金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일시 구속된 사건과 '국회 오물투척’ 등 정치적 대사건의 중심에서 金의원과 동고동락하며 동지적 교감을 나눴다.
 徐교수는 金의원에 대해 "주먹계 시절과는 달리 정치계에선 조직 없이 독불장군이었지만 올바른 길이라고 판단되면 카리스마와 정의감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그는 金의원이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냈던 차지철 국회의원과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갑자기 "당신 힘이 장사라며 나하고 한 번 붙어볼까”라며 웃통을 벗어던지는 '깜짝쇼’를 벌이는 등 호걸다운 면모도 보여줬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金교수는 "金의원은 생전에 해방직후 서북청년단장으로 우익활동을 한 것은 아버지 金佐鎭 장군이 공산당으로부터 암살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金의원이 과도한 반공활동으로 일반에 다소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강점기 주먹의 힘으로 민족적·의협적인 행동을 한 것과 해방후 노동운동과 함께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감에 기반을 둔 정치활동을 한 부분은 높게 평가되야 한다”고 말했다.
 徐교수는 金의원과 활동을 같이 하면서도 대학원 시절부터 대학 강단에 서기 시작했다.
 그는 金의원이 삶을 마감한 72년 이후 정치활동을 접고 지난 79년 국립대로 승격된 강릉대에 교수로 부임, 정년을 10개월 남겨두고 있다.
 江陵/全寅洙 isje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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