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宋)나라 시절 사천성 출신의 진계상(陣季常)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호는 용구거사(龍丘居士)다. 평소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년) 선생과 함께 고금의 성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일세호사(一世豪士)라 했다. 하지만 부인 하동(河東) 유(柳)씨의 성격이 몹시 거칠어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동파가 조롱해 시를 지었다.
‘용구거사나 동파거사나 불쌍하긴 매한가지(龍丘居士亦可憐) / 밤낮없이 공(空)이 어떻고 유(有)가 저떻고 지껄여대지만(談空說有夜不眠) / 문득 하동의 사자후가 들려오자(忽聞河東獅子吼) / 손에서 지팡이를 놓치고 마음이 철렁하네(扶杖落手心茫然)’
‘사자후’는 부처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이른다. 그러나 동파의 이 시가 나온 후 하동사후(河東獅吼)라는 말이 생겼다. 사자후는 아내가 남편에게 암팡지게 따져 호통치는 뜻으로 확대됐다.
십만 대군을 호령하지만 집에 들어가면 아내에게 깨갱하는 장군(將軍)이 있었다. 하루는 연병장에 홍기(紅旗)와 청기(靑旗)을 세워 놓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아내가 무서운 사람은 붉은 깃발, 무섭지 않은 사람은 푸른 깃발 아래로 모여라!”
병사들이 우르르 홍기 밑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독야청청 청기 밑에 섰다. 장군이 장하게 여겨 물었다.
“세상 남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마누라를 제일 무서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자네는 무슨 수로 이런 경지에 올랐는가?”
그 병사가 답했다.
“제 마누라가 늘 말했습죠. 남자 셋 이상 모이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고요. 오늘 보니 붉은 깃발 아래 수많은 병사들이 모이더군요. 그래서 가지 않은 것입니다.”
대장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마누라 무섭기는 늙은 나뿐이 아니구나! 하하하~.”
조선초 서거정(徐居正·1420~1488년) 선생이 세상에 떠도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출간한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년)에게 친구 이재영(李再榮·1553~1623년)이 있었다. 서얼 신분으로 시대와 불화해 늘 가난했다. 하지만 교산은 친구 능력이 자신보다 10배나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하루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추녀 끝에서는 빗물이 똑똑 떨어지고 향로에서는 향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네. 두세 벗들과 어깨와 맨발을 드러낸 채 방석에 앉아 참외를 쪼개 먹으며 번뇌를 씻는 중이라네. 이런 자리에 자네가 없으면 되겠나? 자네의 사자 같은 늙은 아내는 필시 으르렁거려 자네 얼굴을 고양이 면상으로 만들겠지. 하지만 늙은 홀아비의 기세 꺾인 꼴일랑 하지 말게. 문지기가 우산을 가지고 갔네. 가랑비를 피해서 어서 오시게. 벗 사이에 모이고 흩어지는 일은 변화가 무상하다네. 어찌 이런 모임을 자주 하겠는가? 흩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네.’
지난 주말 은퇴한 선배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화려했던 여름이 가고 가을 끝무렵에 서있는 선배들의 작아진 키와 좁아진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단연 제1의 화제는 사자를 닮아 점점 기세등등해지는 형수들의 입심이었다. 한때 거친 현장을 누비며 시대를 기록하던 그 선배들은 흘러가고 없었다.
이 아침 고금동서 사자후에 벌벌 떨던 역사 속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선배들을 위로한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