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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6 11:10 (수)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34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수정헌법 수호위원회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수정헌법 수호위원회

    “여러분!! 국무부는 공산주의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산당원으로 국무부에서 일하며 정책을 만든 자들 205명의 이름이 제 손에 들려 있습니다.”1950년 2월9일. 미국 위스콘신주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1908~1957년)가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에서 말 폭탄을 던졌다. 후일 매카시즘(McCarthyism)으로 명명된 마녀사냥의 총성이 울린 것이다.매카시는 재선 출마가 임박해 왔지만 지지 기반이 약했다. 탈세와 윤리위반 혐의로 당국의 조사까지 받고 있었다. 당선을 위해 그는 반공(反共)을 이용했다.1949년 중국 대륙의 공산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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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3 15:53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황금천 들판 정상회의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황금천 들판 정상회의

    1520년 6월 7일, 영원한 라이벌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이 마주 앉았습니다.헨리 8세(1491~1547년)와 프랑수아 1세(1494~1547년)입니다. 헨리는 ‘영국 역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악당’으로 평가되는 인간입니다. 프랑수아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프랑스의 첫 르네상스형(型) 군주로 통합니다.역사가들은 이 만남을 황금천 들판(Field of the Cloth of Gold) 회담으로 부릅니다. 회담장은 오늘날 프랑스 땅이지만 당시는 도버 해협 건너 잉글랜드령인 칼레 남쪽 평원이었습니다.‘허세왕’ 헨리 8세는 캐서린(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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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0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1905 을사년(乙巳年)의 세 여인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1905 을사년(乙巳年)의 세 여인

    을사년 1905년 조선이 망했다. 바로 120년 전 일이다.11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조선을 왔다. 고종은 10일 그를 접견하고 일본 국서를 받았다.그가 서울에 도착하자 민심이 흉흉해져 모두 변란이 일어날까 걱정했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이 왕이 있는 경운궁을 에워싸고 대포까지 설치했다.11월21일 밤 이토가 어전에 들어가 다섯 개 조항으로 이뤄진 신 조약을 내놓고 서명을 요구했다. 고종은 벌벌 떨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1848~1930년)이 분노해 말했다. “나라가 망하더라도 이 조약은 허락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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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7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사인(士人) 권필(權鞸)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사인(士人) 권필(權鞸)

    1611년 광해군 3년.임숙영(任叔英·1576~1623년)이 대책시(對策試)에서 주어진 이외의 제목과 내용으로 왕의 질문에 답했다. 외척의 횡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관작(官爵)이라는 것은 국가의 공적인 기구이며 제왕의 중요한 권한이니, 어진 이를 우대하고 덕있는 이를 명하는 터전이며 정사를 베푸는 기반입니다. 비록 존비에 순서가 있고 경중은 같지 않으나 각각 맡은 직책이 있어서 국가의 여러 업무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관(官)은 크나 작으나 반드시 그에 맞는 재능을 천거하고, 작(爵)은 높으나 낮으나 반드시 그에 맞는 능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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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0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갈릴리 금화(金貨)의 교훈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갈릴리 금화(金貨)의 교훈

    대학생 시절 고고학 발굴 조사에 참여한 일이 있습니다. 춘천 신매리 지석묘 현장이었습니다.이장님 댁에 숙소를 정하고 먹고 자면서 모종삽으로 돌무덤 주위 흙을 한 줌 한 줌 걷어냈습니다. 두 달여 동안 계속된 발굴은 수천 년 전 잠든 무덤의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그뒤 춘천 서면 신매리 일대는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 삼국시대까지, 우리 조상들의 취락 구조와 장례 문화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북한강 유역의 중요 유적지로 확인됐습니다.당시 근화동 뱃터에서 통통배를 타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과거 속으로 가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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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6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유토피아는 없다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유토피아는 없다

    1980년대 초반 대학에서 철학개론을 들으며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유토피아(Utopia). 20대 청년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어느 곳에도 없다는 의미라는데 놀랐다. 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이상향(理想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철렁”하고 낙담했다.‘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1478~1535년)가 1516년 라틴어로 쓴 소설의 제목이자 얘기 속 가상의 섬나라다. 원제목은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한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대단히 훌륭한 소책자(Libellus vere aur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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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22 07:16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조선 제1의 언관(言官) 박숙달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조선 제1의 언관(言官) 박숙달

    1478년(성종9년) 4월1일 흙비(土雨)가 내렸다. 전에 없던 천재지변이었다. 지진에 이어 하늘이 보낸 경고였다. 왕과 조정은 몸을 잔뜩 낮추고 전전긍긍했다.성종이 승정원을 질책했다. “흙비가 내렸으니 하늘이 내리는 벌이 가볍지 않다. 수나라 황제가 산을 뚫고 땅을 파며 급하지 않은 역사(役事)를 하자 흙비가 내렸다. 당시 ‘백성의 원망이 흙비를 부른 것’이라고 했다. 대신들은 어찌 한 마디 말도 없는가?”좌부승지 손비장(孫比長)이 답했다. “옛 성왕(聖王)과 철왕(哲王)은 재이(災異)를 만나면 두려워했는데 전하도 직언을 들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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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8 00:17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특검과 의금부(義禁府)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특검과 의금부(義禁府)

    태종16년(1416년) 1월13일. 정초 엄동설한에 의정부가 백관(百官)을 이끌고 창덕궁 뜰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렸다.“불충한 죄는 왕법(王法)에 있어서 주륙(誅戮)에 해당하는 것으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지난번 역신(逆臣) 민무구(閔無咎)와 무질(無疾)이 주륙을 당해 그 아우인 무휼(無恤)과 무회(無悔)는 마땅히 감계(鑑戒)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패역(悖逆)한 마음을 품고 무망(誣妄)한 말을 꾸며 성상의 덕(德)에 누를 끼치고자 했습니다. 형들이 죄도 없는데 죽었다고 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 불충한 죄가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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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25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풍수쟁이 목호룡(睦虎龍)의 음모론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풍수쟁이 목호룡(睦虎龍)의 음모론

    영조6년(1730년) 9월9일. 맑았다. 영조는 상을 당해 경덕궁에 머물고 있었다.형조참판 김유경이 신임사화(辛壬士禍) 당시 억울하게 죽거나 옥고를 치른 인사들에 대한 수사 기록의 시정을 요구하는 상소를 했다. 그 가운데 삼급수(三急手)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온다.삼급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8년 전, 경종2년(1722년) 사화(士禍)의 방아쇠를 당겼던 소론계 목호룡(睦虎龍)이 꾸몄던 무고에 처음 등장했다.“노론 일파가 경자년(1720년) 숙종 국상(國喪) 당시 혼란을 틈타 경종을 해치려 했다”고 고변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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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11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송(宋) 황제와 기생 이사사(李師師)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송(宋) 황제와 기생 이사사(李師師)

    ‘강물은 흘러흘러 산을 지나고 / 한없이 시를 지어 노래 부를 때 / 차가운 회수 강에 비가 내린다 // 해오라기 앉은 강가에 안개 짙은데 / 사람들은 뱃전에서 물고기를 사네 // 오래된 절집에 잠시 머물다 / 밤 깊어 스님 방에서 자다 / 꿈결에 놀라 일어나 한숨을 내쉰다 // 시름은 한없이 밀려오는데 / 눈물로 답하는 편지를 쓰네.’송(宋)나라 휘종(徽宗) 조길(趙佶·1082~1135년)이 쓴 시 ‘임강선(臨江仙)’이다. 그는 1100년 즉위해 26년간 황제 자리에 있었다. 달은 차면 기울고 꽃은 피면 진다. 1127년 금(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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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8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막장에서 쏘아 올린 로켓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막장에서 쏘아 올린 로켓

    지난주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을 다녀왔습니다.정선 고한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두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오토버 스카이(October Sky·1999년)’와 ‘꽃피는 봄이 오면(2004년)’입니다.두 영화는 서로 닮았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무대는 탄광지역입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막장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꿈을 쏘아 올린다는 점입니다. 나의 삶이자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대 후반.석탄 채굴로 호황을 누리던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콜우드(Coalwood)는 하나 둘 탄광이 문을 닫으며 경기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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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4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정약용 기자의 1823년 춘천 르포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정약용 기자의 1823년 춘천 르포

    다산 정약용(1762~1836년) 선생은 유배에서 풀려난 뒤 춘천을 두 번 찾았습니다. 1820년 3월 큰 형님 약현이 며느리를 얻기 위해 춘천을 찾을 때 동행했습니다. 또 1823년 4월 손주 며느리를 찾아 아들 학연과 함께 다시 협곡을 거슬러 올라왔습니다.두 번째 여행은 일기로 남겼습니다. 산행일기(汕行日記)입니다.4월15일 산수(汕水·북한강)와 습수(濕水·남한강)가 만나는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집 앞에서 배를 띄웠습니다. 춘천과 화천을 둘러보고 귀가한 4월25일까지 꼭 열 하루가 걸렸습니다.여행에는 배 두 척이 동원됐습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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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0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진면목(眞面目)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진면목(眞面目)

    ‘달빛 가득한 불전에 붉은 깃발 빛나고(月殿耀朱幡) / 바람 부는 오륜탑엔 풍경 소리 딸랑인다(風輪和寶鐸) / 아침엔 원숭이 용마루에서 지절대고(朝猿響甍棟) / 밤엔 냇물 소리 휘장에 깃드네(夜水聲帷箔)’남조 양(梁)나라의 유효작(劉孝綽·481~539년) 선생이 지은 시 ‘동림사(東林寺)’다. 동림사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여산(廬山)에 있는 절이다.여산은 주(周)나라 현자(賢者) 광속(匡俗)이 은거하다 신선이 되고 초막(草幕)만 남았다 하여 ‘초막이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얻었다. 해발 1474m. 중국 정부가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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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16 00:02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투표장으로 가는 길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투표장으로 가는 길

    우리의 고향은 두 개라는 말이 있습니다.한 인간으로 태어난 지리적 공간인 고향과 한 시민으로 보장을 받고 있는 정치, 사회적 권리의 근원인 이념적 고향을 의미합니다. 저의 모국은 대한민국과 프랑스입니다.절대 왕정을 무너트린 1789년 프랑스혁명의 결실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탄생했습니다. 라파예트(1757~1834년)와 시에예스(1748~1836년)가 초안을 작성했고, 국민의회가 1789년 8월 26일 채택했습니다.전문(前文)을 천천히 음미해 보시죠‘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 인민의 대표자들은 인권에 관한 무지·망각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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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2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봉우리와 송풍정(松風亭)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봉우리와 송풍정(松風亭)

    4월의 마지막 날. 매직아워. 낮이 밤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차는 호수를 끼고 느리게 달렸다. 빛은 삼악산 뒤로 사라지고 부지런한 별들이 반짝였다. 의암호 건너 카페는 노오란 빛을 가득 싣고 북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묵직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 봉우리 //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 나한테는 그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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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9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오대산(五臺山) 사고(史庫)의 귀환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오대산(五臺山) 사고(史庫)의 귀환

    임진왜란으로 춘추관(春秋館), 성주(星州), 충주(忠州)에 보관중이던 실록(實錄)이 모두 불에 타 버렸습니다. 천만다행 전주(全州)에 소장돼 있던 실록만이 화를 면했습니다. 처음에는 해주(海州), 다음에는 영변(寧邊)으로 옮겼다 강화(江華)에 봉안했습니다. 전화(戰火)가 꺼진후 실록을 다시 발간하는 사업이 추진됐습니다. 1603년(선조 36년) 7월 시작돼 1606년(선조 39년) 4월 끝났습니다.“이제 선(先) 왕조 실록의 교정을 끝냈고 개보(改補)도 마무리했습니다. 구건(舊件)은 모두 576권인데 새로 인출한 것은 4∼5권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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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5 10:21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삼연(三淵) 선생과 설정(雪淨) 스님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삼연(三淵) 선생과 설정(雪淨) 스님

    유자(儒子)가 창건한 절집이 있습니다. 설악산(雪嶽山) 영시암(永矢庵)입니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이 국시(國是)였던 조선 518년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사건입니다.인제 백담사에서 물길을 거슬러 오세암과 봉정암으로 오르다 쉼터처럼 만나는 암자가 영시암입니다.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년) 선생이 창건주입니다.병자호란 당시 주전파였던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입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사사(賜死)된 김수항(金壽恒·1629~1689년)의 아들입니다. 1721~1722년 신임옥사(辛壬獄事)로 역시 사사된 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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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21 08:06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사자후(獅子吼)와 고양이 면상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사자후(獅子吼)와 고양이 면상

    중국 송(宋)나라 시절 사천성 출신의 진계상(陣季常)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호는 용구거사(龍丘居士)다. 평소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년) 선생과 함께 고금의 성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일세호사(一世豪士)라 했다. 하지만 부인 하동(河東) 유(柳)씨의 성격이 몹시 거칠어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동파가 조롱해 시를 지었다.‘용구거사나 동파거사나 불쌍하긴 매한가지(龍丘居士亦可憐) / 밤낮없이 공(空)이 어떻고 유(有)가 저떻고 지껄여대지만(談空說有夜不眠) / 문득 하동의 사자후가 들려오자(忽聞河東獅子吼) /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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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7 00:00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眞珠伯 李埉(진주백 이협)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眞珠伯 李埉(진주백 이협)

    지난해 여름 동해를 찾았다 틈을 내 무릉계곡에 올랐다. 금란정(金蘭亭)에서 땀을 식히다 폭염을 못참고 계곡으로 내려가 벽계수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방바닥 같은 커다란 바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영조 30년(1754년) 1월1일 창덕궁은 분주했다.왕은 새해를 맞아 태묘(太廟)와 영희전(永禧殿)에 인사했다. 이 해 영조는 60세 주갑(周甲)이었다. 어머니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육상궁(毓祥宮)도 찾아 절했다. 그리고 어제(御製)인 술회시(述懷詩)와 서대기(犀帶記)를 쓰라고 명했다. 서대는 일품(一品) 관리가 허리에 두르던 띠다.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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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3 10:23
  •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봄바람에 살구꽃 흩날리네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봄바람에 살구꽃 흩날리네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1723~1801년) 선생이 벼슬이 변변치 않을 때 광주(廣州)를 지나다 비를 만났습니다. 남의 집으로 뛰어 들어가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은 낯선 얼굴이어서 예를 차리지 않았습니다. 비는 그치지 않고 날도 저무니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머물게 됐죠. 그런데 주인은 우물우물 읊조리며 뭔가 고민하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주인장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요?”“친한 벗이 있는데 나이가 마흔입니다. 일찌감치 문장을 이뤘으나 운수가 기구해 형제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홀어머니만 계시는데 여태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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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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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일: 199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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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실장: 이수영
    • 편집국장: 이 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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