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가득한 불전에 붉은 깃발 빛나고(月殿耀朱幡) / 바람 부는 오륜탑엔 풍경 소리 딸랑인다(風輪和寶鐸) / 아침엔 원숭이 용마루에서 지절대고(朝猿響甍棟) / 밤엔 냇물 소리 휘장에 깃드네(夜水聲帷箔)’
남조 양(梁)나라의 유효작(劉孝綽·481~539년) 선생이 지은 시 ‘동림사(東林寺)’다. 동림사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여산(廬山)에 있는 절이다.
여산은 주(周)나라 현자(賢者) 광속(匡俗)이 은거하다 신선이 되고 초막(草幕)만 남았다 하여 ‘초막이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얻었다. 해발 1474m. 중국 정부가 1982년 첫 번째 국가급 풍경 명승지로 공포했다. 1996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여산은 동진(東晉)의 혜원(慧遠) 선사가 백련사(白蓮寺)를 창건한 정토종(淨土宗)의 발상지다. 400여 개의 마애석각(磨崖石刻)이 있다.
당(唐)나라 선인(仙人) 여동빈(呂東賓)이 도를 닦았다는 선인동(仙人洞)도 있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에게 성리학을 전수한 주돈이(周敦頤) 선생이 만년에 연화봉(蓮花峯) 아래에 염계서당(濂溪書堂)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다. 남송(南宋) 주희(朱熹)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지어 은거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여산은 불교, 도교, 유교가 모두 둥지를 튼 성지(聖地)다.
여산에는 서림사(西林寺)도 있다. 칠령(七嶺) 서쪽에 절집을 지었다. 칠령은 여산 동쪽에 모여 있는데 서로 합하여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동파 소식(蘇軾·1037~1101년) 선생이 1084년 5월 동생 소철(蘇轍·1039~1112년)과 함께 서림사를 찾았다.
‘이리 보면 고갯마루 저리 보면 산봉우리(橫看成嶺側看峰) /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각기 다르네(遠近高低各不同) / 여산의 참 모습은 정말로 알 수 없으니(不識廬山眞面目) /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只緣身在此山中)’
소식이 서림사를 다녀온 뒤 쓴 시 ‘제서림벽(題西林壁)’이다.
어릴 적 퇴계동에서 출발해 춘천중으로 가는 등교길에 매번 봉의산을 마주했다. 춘천의 진산(鎭山)은 정중앙 봉우리를 머리 삼고 좌우 산기슭이 어깨를 닮은 정적인 모습이었다. 어느 날 학곡리 이모님 댁을 다녀 오다 바라본 봉의산은 여러 봉우리들이 말갈기를 휘날리며 동에서 서로 내달리는 역동적인 모양이었다. 그뒤 강 건너 서면에서, 혹은 우두벌에서 바라본 봉의산은 정형화된 얼굴이 아니었다.
소식과 소철 형제가 서림사로 가는 길. 여산도 산굽이를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고개로 보이기도 하고 가파른 산봉우리로 보이기도 했다. 시선에 따라 형상은 제각각, 각양각색이었다.
진면목(眞面目)이란 무엇일까?
시인은 말한다. “마음이 근원적이며 객관적이어야 참 모습이 보인다.” 사물과 상황을 바로 보는 시선은 거시(巨視), 미시(微視), 근시(近視), 원시(遠視)의 총합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하나 만으로는 온전하게 분별할 수 없다.
시시각각 마주하는 만물(萬物)과 만인(萬人)도 편견 없이 골고루 깊게 들여다 봐야 그 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