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향은 두 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난 지리적 공간인 고향과 한 시민으로 보장을 받고 있는 정치, 사회적 권리의 근원인 이념적 고향을 의미합니다. 저의 모국은 대한민국과 프랑스입니다.
절대 왕정을 무너트린 1789년 프랑스혁명의 결실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탄생했습니다. 라파예트(1757~1834년)와 시에예스(1748~1836년)가 초안을 작성했고, 국민의회가 1789년 8월 26일 채택했습니다.
전문(前文)을 천천히 음미해 보시죠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 인민의 대표자들은 인권에 관한 무지·망각 또는 멸시가 공공의 불행과 정부 부패의 모든 원인이라는 것에 유의하면서, 하나의 엄숙한 선언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연적이고 불가양(不可讓)이며, 신성한 모든 권리를 밝히려 결의하거니와, 그 의도하는 바는, 사회체의 모든 구성원이 항시 이 선언에 준하여 부단히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하며, 입법권과 행정권의 모든 행위가 수시로 모든 정치 제도의 목적과의 비교에서 보다 존중되게 하기 위하여, 시민의 요구가 차후 단순하고 명확한 모든 원리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언제나 헌법의 유지와 모두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회는 지고(至高)의 존재 앞에 그 비호 아래 다음과 같은 인간과 시민의 모든 권리를 승인하고 선언한다.’
인권선언은 모두 17조로 이뤄졌습니다.
제1조.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보전함에 있다. 그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 등이다.
제3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떠한 단체나 어떠한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유래하지 않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제4조. 자유는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음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자연권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같은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는 이외의 제약을 갖지 아니한다. 그 제약은 법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제5조. 법은 사회에 유해한 행위가 아니면 금지할 권한을 갖지 아니한다. 법에 의해 금지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방해될 수 없으며, 또 누구도 법이 명하지 않는 것을 행하도록 강제될 수 없다.
제6조. 법은 일반 의사의 표명이다.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표자를 통하여 그 작성에 협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법은 보호를 부여하는 경우에도, 처벌을 가하는 경우에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그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덕성과 재능에 의한 차별 이외에는 평등하게 공적인 위계, 지위, 직무 등에 취임할 수 있다.
제7조. 누구도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 그리고 법이 정하는 형식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소추,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없다. 자의적 명령을 간청하거나 발령하거나 집행하거나 또는 집행시키는 자는 처벌된다. 그러나 법에 의해 소환되거나 체포된 시민은 모두 즉각 순응해야 한다. 이에 저항하는 자는 범죄자가 된다.
제8조. 법은 엄격히, 그리고 명백히 필요한 형벌만을 설정해야 하고 누구도 행위에 앞서 제정·공포되고, 또 합법적으로 적용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될 수 없다.
제9조. 모든 사람은 범죄자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므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판정되더라도 신병을 확보하는 데 불가결하지 않은 모든 강제조치는 법에 의해 준엄하게 제압된다.
제10조. 누구도 그 의사에 있어서 종교상의 것일지라도 그 표명이 법에 의해 설정된 공공질서를 교란하지 않는 한 방해될 수 없다.
제11조. 사상과 의사의 자유로운 통교(通交)는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다만,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에 있어서의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12조. 인간과 시민의 모든 권리의 보장은 공공 무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설치되는 것으로서, 그것이 위탁되는 사람들의 특수 이익을 위해 설치되지 아니한다.
제13조. 공공 무력의 유지를 위해, 그리고 행정 비용을 위해 일반적인 조세는 불가결하다. 이는 모든 시민에게 그들의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제14조.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그들의 대표자를 통하여 공공 조세의 필요성을 검토하며, 그것에 자유로이 동의하며, 그 용도를 추급하며, 또한 그 액수, 기준, 징수, 그리고 존속 기간을 설정할 권리를 가진다.
제15조. 사회는 모든 공직자로부터 그 행정에 관한 보고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제16조.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확정되어 있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지 아니하다.
제17조. 하나의 불가침적이고 신성한 권리인 소유권은 합법적으로 확인된 공공 필요성이 명백히 요구하고, 또 정당하고, 사전에 보상의 조건에서가 아니면 침탈될 수 없다.
살아있는 최고 권력을 탄핵하고 파면하는 힘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도 연원을 찾다 보면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과거는 물론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 같습니다.
행정, 입법, 사법에 이어 자유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언론자유도 부단히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NYT)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45) 회장 겸 발행인이 지난 13일 발표한 글이 화제입니다. ‘자유로운 국민에겐 자유 언론이 필요하다(A Free People Need a Free Press)’
주요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미국은 건국 이래 언론을 자유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요소로 공인해 왔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통찰을 수정헌법 제1조에 규정했고, 언론은 헌법을 통해 보호받는 유일한 직업이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대통령, 의원, 대법관은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있습니다.”
“언론이 국가의 성공에 꼭 필요하다는 초당적 인식은 이같은 기조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언론의 세 가지 역할은 미국 시민사회의 건강을 위협하는 도전 과제들과 정확히 연계됩니다. 먼저 그 어느 때보다 허위 정보가 급증해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언론은 대중이 선거, 경제, 혹은 각자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필요로 하는 믿을 만한 정보가 유통되도록 보장합니다. 둘째. 양극화와 부족주의(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인 집단을 추구하는 이념)가 사회적 유대를 약화시킬 때 언론은 분열된 국가가 하나의 공동목표 아래 단결할 수 있도록 상호 간의 이해를 촉진합니다. 끝으로 불평등 확산이 ‘미국의 약속(American promise)’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때 언론은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숨겨진 진실을 폭로해 대중이 권력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만듭니다.”
“우리 직업이 가장 환대받는 직업은 아니라는 점을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매체들이 정보 전달보다 엔터테인먼트(유희)를, 이해 촉진보다는 분노와 두려움의 확산을, 중요한 문제보다는 유행하는 사안을 전파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비평가는 많고 기자는 너무 적은 나라에서 매체에 대한 신뢰가 급락한 것을 우연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자유 언론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자유 언론은 자유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자율 통치라는 고귀한 실험’이라고 부른 이 실험이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자유롭고 강하고 독립적인 언론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다’”
“우리는 저항 세력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반대하거나 누군가를 응원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진실(眞實), 그리고 마땅히 그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대중에게만 충성합니다. 이것이 NYT와 같은 독립적인 언론사가 민주주의에서 수행하는 독창적 역할입니다”
“자유로운 언론이 없다면, 정부가 법에 따라 행동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도자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요? 국가의 제도가 사회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짜여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국민의 자유가 유지되고 방어되며 옹호되는지, 아니면 진실과 현실을 선전하고 허위 정보로 대체하려는 세력에 의해 자유가 침식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수정 헌법과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관한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국가의 최고 리더를 뽑는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시대 착오적이고 반동적인 비상 계엄이 잉태한 조기 대선입니다.
투표장으로 가는 길, 우리의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언론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