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막장에서 쏘아 올린 로켓

지난주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을 다녀왔습니다.

정선 고한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두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오토버 스카이(October Sky·1999년)’와 ‘꽃피는 봄이 오면(2004년)’입니다.

두 영화는 서로 닮았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무대는 탄광지역입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막장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꿈을 쏘아 올린다는 점입니다. 나의 삶이자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 1999년 개봉된 조 존스턴 감독,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오토버 스카이’ 영화 포스터
▲ 1999년 개봉된 조 존스턴 감독,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오토버 스카이’ 영화 포스터

1950년대 후반.

석탄 채굴로 호황을 누리던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콜우드(Coalwood)는 하나 둘 탄광이 문을 닫으며 경기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 듭니다. 미·소간 냉전이 극에 달했던 당시 소련은 1957년 10월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는데 성공합니다. 미국은 물론 서방세계는 우주를 점령한 소련의 붉은 야망에 전전긍긍합니다. 콜우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밤하늘을 빠르게 이동하는 인공위성을 쳐다보며 모두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반대로 인공위성 개발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도전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광부를 천직으로 알고 대를 물려 아들을 광부로 키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꺾으려 듭니다. 궁벽한 시골 탄광지역에는 로켓을 공부할 수 있는 책 한 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만든 로켓은 마침내 하늘을 향해 날아 오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지원까지 더해지며 전국 과학박람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주인공들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합니다.

영화는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켓 발사장을 찾은 아버지의 카운트 다운과 함께 대형 로켓이 하늘로 치솟아 푸른 창공을 무한 비행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미 동부 워싱턴 D.C.에서 그리 멀지 않은 콜우드에 가면 탄광지역 소년들의 꿈의 무대인 로켓 발사장과 로켓 보이들을 기리는 기념관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 2004년 개봉된 류장하 감독,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 영화 포스터.
▲ 2004년 개봉된 류장하 감독,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 영화 포스터.

1990년대 중반.

삼척 도계 사람들은 긴 겨울 끝에 잠시 왔다 가는 봄을 기다립니다. 예술이냐? 밥이냐?를 놓고 고민하다 서울에서 밀려난 주인공은 관악부 임시 교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도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창고 같은 교실에서 눈병으로 안대를 한 채 북 치고 나팔 부는 학생들로 왁자지껄한 도계중 관악부 문을 두드립니다.

현실은 활기를 잃어가는 폐광지처럼 척박합니다. 주인공은 어린 제자의 할머니 병원비 마련을 위해 술집 밤무대에서 트렘펫을 붑니다. 꿈을 잊은 광부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관악 활동을 막고 나섭니다. 하지만 주인공과 학생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막장을 막 걸어 나오는 광부 아버지들 앞에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합니다. 그리고 얼어 붙었던 도계 사람들의 마음에도 봄이 오고 싹이 돋기 시작합니다.

결말은 따뜻합니다. 전국대회 우승을 전제로 유지됐던 관악부 교실은 번듯한 음악실로 변해 있습니다. 관악 선생님의 빛나는 트럼펫은 관악부 맨 앞자리 빈 의자에 헌정돼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맨 처음 만났던 학생들처럼 눈병을 얻어 안대를 한 채 서울로 올라가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 옛 연인에게 전화를 겁니다.

영화 ‘오토버 스카이’와 ‘꽃피는 봄이 오면’은 모두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 폐광지의 팍팍한 삶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제1의 탄광도시였던 태백시 인구는 11만7000명에서 3만7000명으로 급감했습니다. 석공의 마지막 탄광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도계는 차도 사람도 찾지 않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현실과 영화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다시 답을 찾아야 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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