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마지막 날. 매직아워. 낮이 밤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차는 호수를 끼고 느리게 달렸다. 빛은 삼악산 뒤로 사라지고 부지런한 별들이 반짝였다. 의암호 건너 카페는 노오란 빛을 가득 싣고 북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묵직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 봉우리 //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 혼자였지 /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 잊어버려 /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 이봐 /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 혹시라도 /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 바다 //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 우리 땀 흘리며 가는 /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김민기(1951~2024년) 작사 작곡의 ‘봉우리’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르지 못해 선수촌을 떠나 집으로 가야 했던 무명의 선수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주제곡이었다.
“나는 일찍이 혜주(惠州) 가우사(嘉祐寺)에 있었는데 하루는 발걸음이 가는 대로 송풍정(松風亭) 아래를 거닐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피곤해 침상에 가 쉬고 싶어졌다. 멀리 바라보니 정자는 아직 까마득한 나무 끝에 걸려 있어 ‘어떻게 해야 저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여기에는 어째서 쉴 수가 없다는 말인가?’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이로 말미암아 낚시바늘에 걸렸던 물고기가 홀연 구속에서 벗어남을 얻은 것 같았다. 만약 사람들이 이런 이치를 깨닫는다면 전진하면 적에게 죽고 후퇴하면 군율에 따라 죽는 지경에 처한다 해도 충분히 쉬는 것도 무방하리라.”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년)은 1094년 광동 혜주에 유배중이었다. 그는 나들이길에 목적지를 정했기에 벅찼다. 하지만 그 목표를 버리자 낚시바늘에서 풀려난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졌다. 인생의 철리(哲理)를 터득한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김민기의 ‘봉우리’와 동파거사의 송풍정 나들이가 오버랩됐다. 오늘도 나는 허상을 쫓은 것은 아닐까? 어째서 여기서는 쉴 수가 없다는 말인가….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