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갈릴리 금화(金貨)의 교훈

대학생 시절 고고학 발굴 조사에 참여한 일이 있습니다. 춘천 신매리 지석묘 현장이었습니다.

이장님 댁에 숙소를 정하고 먹고 자면서 모종삽으로 돌무덤 주위 흙을 한 줌 한 줌 걷어냈습니다. 두 달여 동안 계속된 발굴은 수천 년 전 잠든 무덤의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뒤 춘천 서면 신매리 일대는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 삼국시대까지, 우리 조상들의 취락 구조와 장례 문화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북한강 유역의 중요 유적지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근화동 뱃터에서 통통배를 타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과거 속으로 가던 시간이 아직도 뇌리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또 나룻터 구멍가게에서 동전 몇 개를 건네고 “호호, 후후” 불며 사먹던 라면은 지금도 입 안에 침을 고이게 합니다.

나들이 삼아 나섰던 의암호 지표조사에서 간 돌도끼(磨製石斧)와 돌 화살촉을 발견하고, 친구들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흥분했던 그 순간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며칠 전 이스라엘 갈릴리 바닷가 고대 도시에서 금화 아흔일곱 개와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들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비잔틴 시대 유물로 추정됩니다.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섬에서 610년 주조된 금화는 이스라엘에서 두 번째 발견이라고 합니다.

이 보물은 614년 이란이 세운 사산 제국(224~651년)의 칼과 창이 페르시아와 시리아를 피로 물들일 때 사람의 손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 오자 돈과 권세 그리고 명예도 갖고 있던 한 귀족이 현무암 벽 사이에 꼭꼭 숨겨둔 것으로 추정됩니다. 생사가 교차하는 순간에 전쟁의 불길이 꺼지면 꼭 다시 찾겠다는 마음으로 ….

하지만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잃은 금화는 1400년이 지나 한 고고학자의 손에 들어가며 햇빛을 본 것입니다.
 

▲ 이스라엘 하이파대학 발굴조사단이 최근 갈릴리 바닷가에서 발견해 공개한 7세기 금화의 앞면. 헤라클리우스 황제(610~613년)의 초상화가 보인다. 사진/이스라엘 타임즈 인용
▲ 이스라엘 하이파대학 발굴조사단이 최근 갈릴리 바닷가에서 발견해 공개한 7세기 금화의 앞면. 헤라클리우스 황제(610~613년)의 초상화가 보인다. 사진/이스라엘 타임즈 인용

재물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년) 선생이 유배지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읽어 보겠습니다.

‘세상의 옷이나 음식, 재물은 부질없는 것이고 가치없는 것이다. 옷이란 입으면 닳게 마련이고 음식은 먹으면 썩고 만다. 재물은 자손에게 전해 준다 해도 끝내는 탕진되고 만다. 다만, 몰락한 친척이나 가난한 벗에게 나누어 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닳고 없어지는 수밖에 없고,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가 없다.

재화(財貨)를 비밀리에 숨겨 두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시혜(施惠)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나눠주면 도적에게 빼앗길 걱정이 없다. 불에 타버릴 걱정도 없다. 소나 말로 운반하는 수고도 없다.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게 재물이다. 재물이야말로 메기 같은 물고기다.’

우리가 너무 늦게 만난 이 시대의 큰 어르신이 계십니다.

평생 나눔으로 후학을 키우신 진주의 김장하 선생입니다. 그 분도 말씀하십니다. “돈은 쌓아 두면 똥이 되고, 나누면 거름이 된다.”

모처럼 긴 추석 연휴입니다.

귀향길 두 주머니가 두둑하시다면, 차 트렁크가 가득하시다면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던 일가 친척이나, 눈인사가 뜸했던 이웃들과 나누시는 게 어떨까요?

나눌 것이 없다면, 또 어떻습니까. 아무리 퍼주고 아무리 펑펑 써도 늘 남아도는 우리의 마음과 당신의 웃음을 이웃들과 나누시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한가위 명절 모두 무탈하시고 강녕하시길 기원합니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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