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심 일깨우는 산사의 나눔과 배려
해발 1244m, 설악산 대청봉 턱 밑에 위치한 봉정암은 등산객에게 공양밥을 제공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미역국에 밥이 기본이고, 단무지 등의 반찬이 그때 그때 여건에 따라 나오는데, 등산객 입장에서는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담사에서 편도 10.6㎞. 기나긴 수렴동·구곡담 계곡을 지나 봉정암의 마지막 관문인 ‘깔딱고개’에 올라서면, 지친 등산객들의 허기진 뱃속에서는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리는데, 그때 점심 공양시간에 때맞춰 급시우(及時雨)처럼 밥이 제공되는 것이다.
7∼8년 전쯤, 한동안 봉정암의 풍광과 운치에 매료돼 여러 차례 탐방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주먹밥에 미역국이 제공되던 때였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경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양동이에 수북이 담긴 주먹밥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집어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공깃밥 한 그릇은 족히 될 크기. 이 깊은 산속에서 이만한 요깃거리를 또 어디서 만나겠는가. 한개 한개 집어가기 편하도록 비닐 봉지에 정성껏 싼 마음씨며, 미역국까지 마음껏 퍼먹을 수 있도록 곁들인 배려가 산행의 피로를 순식간에 잊게했다. 맛은 또 어찌나 감탄스럽던지. 말 그대로 손으로 뭉친 밥인데도 김과 참깨, 참기름을 더한 듯 향긋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주먹밥치고는 그야말로 ‘특식’인 셈이다.
등산객들은 너나없이 주먹밥을 한 개씩 들고, 산사의 양지바른 뜨락에 걸터앉거나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봉정암 사리탑 조망터에 올라 요기를 했다. 천하제일경을 품고 있는 가람. 무엇인들 감칠맛이 돌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봉정암의 주먹밥은 분명 오래 추억할 만한 맛이었다. 먼 길을 걸어온 산객의 수고를 위로하면서, 베풀고 나누라고 가르치는 산사의 보시심이 공양밥을 통해 온전히 전해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 봉정암의 밥은 사람만 먹는 것이 아니다. 순례객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봉정암 석가사리탑(보물 제1832호) 제단에 차곡차곡 쌓인 쌀 포대 시주물 가운데 몇 개는 봉투가 뜯어져 있다. 그 뜯긴 구멍으로 삐져나온 쌀을 먹기 위해 다람쥐 몇 마리가 사람들이 백팔배 기도를 올리는 중에도 열심히 제단을 들락거린다. “아하 이놈들이 쌀을 먹기 위해 포대를 찢었구나.” 여러 마리가 쉴 새 없이 쌀을 입에 물고 오르내리면서 제단 위는 물론 바닥에까지 쌀이 흩어져 있으나, 사리탑 앞에서 하염없이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객들은 아무도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설악산 높디높은 산사에서 사람과 자연이 그렇게 나누면서 어울리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천하제일경의 화룡점정이다. 강릉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