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자연 모두 경계해야 할 ‘달콤한 유혹’
등산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많은 야생동물을 만나게 됩니다. 늦가을 바위 암릉에서는 월동을 위해 독을 잔뜩 품은 독사를 만나 저도 놀라고, 나도 놀라 식은땀을 흘려야 할 때도 있고, 인적 드문 깊은 산에서 지나가는 멧돼지를 발견하고 숨 죽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불상사를 당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뱀을 만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기에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라다가도 익숙해지면 긴장의 정도가 한층 줄어들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산에는 지리산 등에 방사한 곰이나 야생 멧돼지 등을 제외하면 맹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또 야생동물이 먼저 등산객을 공격하는 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산에서 가장 친숙한 생명체는 다람쥐입니다. 인기척에 달아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개중에는 재롱 부리듯 다가서는 놈들도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설악산 봉정암을 등산할 때 일입니다. 빈터에 자리잡고 배낭에서 요깃거리를 꺼내 먹고 있는데, 눈앞에 뭐가 자꾸 어른거립니다. 가만히 보니 다람쥐 두세 마리가 주변을 돌면서 떠나지 않습니다. 숫제 옆으로 다가와 등산화를 건드리는 놈도 있습니다.
“어! 이놈들 봐라” 하는 마음에 손을 내밀자 손바닥 위에 냉큼 올라섭니다. 해발 1000m 이상 심산유곡에 사는 다람쥐가 사람 손바닥에 스스럼없이 올라서다니. 인간과 동물이 유별한 자연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사람들이 먹이를 던져주는 바람에 다람쥐가 ‘가축화’되고 있다면 이해가 될까요. 다람쥐들은 등산객의 배낭에서 과자 부스러기나 견과류 등 매혹적인 먹을거리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급기야는 서커스장의 원숭이처럼 사람 손에 올라서는 기이한 행동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등산 인구가 늘어나면서 요즘 유명 산의 다람쥐들은 야생의 먹이활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그로 인해 다람쥐가 도토리의 떫은 맛을 잊어버렸다면, 그게 정상일까요. 귀엽다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달콤한 맛에 길들여진 다람쥐는 궁극에는 야생성을 잃을 것이고, 그것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요즘 등산로에는 도토리가 유난히 많습니다. 다람쥐가 떫은 맛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많은 도토리가 산길에 뒹구는 것은 아닌지, 별 걱정이 다 생깁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달콤한 유혹에 길들여지면 기어코 문제가 생기고 만다는 것을 사람과 친해진 다람쥐를 통해 새삼 실감합니다.
물론 한겨울 폭설기에 야생동물에게 먹잇감을 제공하는 먹이주기 행사는 별개의 활동입니다. 강릉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