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0 (수)

[최동열의 요산요설(樂山樂說)] 38. 호식총(虎食塚)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한 경고

▲ 태백산 당골-천제단 등산로 길옆에 있는 호식총
▲ 태백산 당골-천제단 등산로 길옆에 있는 호식총

우리나라 산에는 사람을 노리는 맹수가 없다. 등산객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갈기를 세운 사자가 어슬렁거리고, 호랑이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사람을 노린다면, 어찌 마음대로 산에 들 수 있겠는가.

산행을 하다보면, 옛날에 우리 산에서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를 확인케 하는 안타까운 증거물을 간혹 만날 수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무덤, ‘호식총(虎食塚)’이 그것이다. 호식총은 강원도와 경상도의 깊은 산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 지역이 예전에 화전(火田)이 많았던 것과 무관치 않다. 산에 불을 내 숲을 태운 뒤 그 척박한 터를 밭으로 일구어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했던 화전민들에게 맹수의 위협까지 더해졌으니 깊은 산중 생활은 하루하루 고된 노동에 상상을 초월하는 환란을 감내해야 하는 전장(戰場)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

호환(虎患) 희생자가 나오면, 이웃들은 ‘호식장(虎食葬)’이라는 독특한 장례로 시신을 거두었다. 그 자리에서 화장하고, 돌무덤을 쌓은 뒤 옹기 시루를 위에 덮고, 시루 구멍에는 쇠꼬챙이를 꽂는 기이한 형태의 무덤을 만든 것이다. 이 호식총은 희생자의 영면을 돕는 무덤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 희생자의 영혼을 억누르고 옥죄는, 돌감옥 같은 전혀 상반된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물겹다.

우선, 호환을 당한 시신을 깊은 산속에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고, 찾아서 거두는 행위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발로이다. 그런데 호식총의 형태는 마치 감옥에 죄인을 가두듯이 철저하게 폐쇄적이다. 돌무덤을 쌓고 시루를 덮는 것도 모자라 시루 구멍에 쇠꼬챙이까지 꽂아 봉했다. 이는 민간의 ‘창귀’ 전설과 관계가 깊다. 호환을 당한 사람을 창귀라고 하는데, 이 창귀를 꼼짝 못하게 가두어야 또 다른 희생을 부르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한편으로 매우 비정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는 산중의 주민들에게 예방적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기능도 겸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깊은 산중에서 항상 삼가고 조심해야 창귀의 꼴을 면할 수 있다는 경고를 일깨운 것이다.

예전에 필자가 어렸을 때, 강원도 산간마을에서는 창귀와 관련된 오싹한 얘기들이 참 많았다. 한밤중에는 밖에서 이름을 세 번 이상 부르기 전에는 절대 문을 열고 나가지 말라고 했던 괴담 등이다. 그 호식총을 지금도 강원도 깊은 산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태백산 당골∼천제단 사이 등산로 길옆에서도 구경할 수 있다. 때가 혹서기라, 납량 차원에서 호식총을 떠올려봤다.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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