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하늘이 꽉 닫혀 인색하게 굽니다.
천년 축제 강릉단오제가 열리던 대관령에서 화려한 굿판 대신 간절한 기우제가 올려졌습니다. 시민의 마음을 담아 축문을 읊으며 하늘에 비를 청했습니다. 무녀의 손끝이 바람을 그을 때, 모인 이들의 눈빛은 바람보다 더 간절했습니다. 과학의 시대라 하지만, 가뭄 앞에서는 결국 인간은 다시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강릉의 사정은 안타깝습니다. 주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18%대에 머물며 평년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위성사진 속 저수지는 더욱 적나라합니다. 4월까지만 해도 물로 가득 차 있던 골짜기들은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흙과 풀들이 물 대신 햇볕을 삼키고 있습니다. 물줄기가 말라붙은 하류는 자갈만 뒹굴고 있습니다. 위성조차 이 땅의 갈증을 목격하는 셈입니다.
시민의 삶은 이미 크게 달라졌습니다. 지난 20일부터 수도밸브 개도율을 50%로 조정해 물 공급량을 절반으로 줄여 제한급수를 하고 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자 이전보다 약해진 물줄기가 흘러나옵니다. 심각 단계로 격상된 이후에는 음식점과 집단급식소에 한시적으로 1회용품 사용이 허용됐습니다. 그동안 환경을 위해 ‘NO 플라스틱’을 외치던 사회가 이제는 물 절약을 위해 일회용품을 쓰라고 권하고 있으니, 이 상황이 아이러니합니다. 또 ‘물 쓰듯’이라는 말이 이제는 사치스러운 표현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풍경은 결코 강릉만의 이야기가 아니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기회가 마르고, 관계가 갈라지고, 마음의 샘이 바닥나면 누구나 목마른 가뭄을 겪습니다. 그때 우리는 원망부터 앞세우지만, 사실 가뭄은 잊고 있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물 한 바가지에 감사하듯, 결핍의 시절에는 사소한 관심 하나에도 눈시울이 젖습니다. 풍요는 자랑을 낳지만, 결핍은 연대를 낳듯이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물길은 반드시 찾아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 그리고 함께 나눌 줄 아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번주 비 예보, 믿어도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