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청량감 더하는 기우제 명소
강릉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중심대로인 강릉대로에서 대관령 방향을 쳐다보면, 여러 산봉 가운데 군계일학처럼 솟아 오른 고산 산봉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능경봉(해발 1123m)이다. 대관령 남쪽의 산맥 가운데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통한다. 대관령 정상을 기준으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선자령을 만날 수 있고, 남쪽으로 가면 능경봉에 오를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능경봉은 대관령 북측의 대관령국사성황당과 함께 강릉 사람들이 유난히 영험하게 여기는 산봉이다. 때문에 매년 연초에 무사 안녕 기원제를 올리려는 기관·단체나 등산 동호회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봄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고, 가을 단풍과 겨울 설산(雪山)의 진경산수화 등 사계절 어느 때든 산행의 만족감을 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름철 폭염기에 특히 매력을 느낀다. 능경봉의 여름은 한줄기 볕조차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신록이 우거져 맨얼굴을 드러내고 걸어도 볕에 그을리거나 탈 일이 전혀 없다.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 전체가 그늘을 드리워 시원한 청량감을 선물하니, 폭염기를 위해 준비된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나무 침엽수림으로 유명한 대관령 산군(山群)이지만, 오직 능경봉 산릉만 잎 넓은 활엽수림으로 우거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별로 힘겹지 않다. 대관령 정상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편도 1.8㎞ 거리이다. 이동 거리 자체가 짧은 데다, 대관령이 정상이 이미 해발 865m 고지대이다 보니 능경봉 정상까지는 표고를 260m 정도만 끌어올리면 된다. 왕복 2시간 정도면 충분한 경로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의 제법 이름 있는 고봉에 발을 올리는데, 이 정도 수고도 감내하지 못한다면, 그건 고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능경봉 정상에 서면 강릉시내와 동해바다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그 길로 쭉 대간 종주 능선을 따라 4.8㎞를 더 나아가 고루포기산(해발 1238m)까지 장거리 연계 산행을 할 수도 있지만, 이동 차편이 없으면, 갔던 길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능경봉에서 조금만 더 발품을 팔아 ‘행운의 돌탑’까지만 탐방하는 여정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강릉지역 향토 역사서인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는 ‘봉(능경봉) 꼭대기에 영험한 샘(靈泉)이 있어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오기를 빌면 신통하게 비가 온다’며 기우제 명소로 꼽은 기록이 있으니, 영동지역이 극한 가뭄에 신음하는 이때, 능경봉의 기우(祈雨) 기운이 하늘에 전해지기를 기원해 본다. 강릉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