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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6 11:10 (수)

[뉴스옆자리] 아주 나이스(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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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정상회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 펜. 이 펜은 선물이 아닌 이 대통령의 서명용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선물했다.  대통령실 제공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정상회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 펜. 이 펜은 선물이 아닌 이 대통령의 서명용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선물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주 많은 분들이 한미정상회담 이야기를 하셨을 겁니다. 그중에서도 저처럼 ‘문구덕후’들은 더 할 얘기가 많았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서명하던 ‘펜’에 트럼프 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이며 우리의 이목도 끌었습니다. “그 펜은 대통령님의 것이냐”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곧 흥미로운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을 들어 보이며 연신 “Nice(좋다), 두께가 아름답다”라고 감탄했고, 이 대통령은 웃으며 “한국 것”이라고 했죠. 잠시 뒤 이 대통령은 “갖고 가셔도 좋다”는 손짓을 보이셨고, 트럼프 대통령은 반색하며 “실제로 쓰진 않겠지만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했습니다.

언뜻 사소한 일화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짧은 장면은 역사책의 굵직한 문장보다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이날 펜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이 서명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기록하며, 역사를 남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상 간에 오간 한 자루의 펜은 외교의 무거운 언어를 대신하여 웃음과 친근감을 선사한 상징이었죠.

우리 역사 속에서도 문방사우(文房四友=붓·먹·종이·벼루)는 늘 학자와 권력자의 곁을 지켜 왔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벼루와 붓을 아끼고 수집하시며 그것을 예술과 학문 탐구의 반려자로 삼았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유배지에서 벼루와 종이를 구해 학문을 이어 가셨습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서로의 붓과 벼루를 자랑하며 교류하였고, 희귀한 문방사우는 가문의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작은 도구가 곧 교양이자 품격, 더 나아가 권위의 상징이었던 셈입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생각해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의 펜을 탐하던 마음과 조선 사대부가 벼루를 모으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두 경우 모두 도구를 넘어선 상징적 힘을 얻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글을 써 생각을 남기고, 기록을 통해 자신을 세상과 잇고 싶어 한다는 욕망도 담아서 말이죠.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과 PC에 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펜을 쥐면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일상의 작은 도구인 펜을 들면 왠지 진지해지고, 흔적을 남기는 순간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멀리 미국 백악관에서의 ‘펜’ 해프닝은 더 눈길이 갑니다. 펜 하나가 양국 정상 사이의 거리감을 줄였듯, 한 뼘 남짓의 도구가 때로는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된 것 같아서요.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무력이 아니라, 작은 도구를 귀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그나저나 문구덕후로서 저 ‘나이스’한 펜을 얼른 구매하고 싶은데 ‘제나일’ 공방의 품절은 언제 풀릴까요. <김영희 디지털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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