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조망 옛 정취 가득한 ‘칼 고뎅이’
동해안 등산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솔내음에 취해 바다를 조망하는 멋이 으뜸이다. 특히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뻗어내린 산 지맥이 바다 근처까지 뻗친 경우에는 넘실대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야릇한 감흥에 젖을 수도 있다.
강릉의 괘방산과 삼척의 검봉산이 그런 곳이다. 검봉산은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에 있는 산이다. 해발 682m. 한자로는 ‘劍峰山’이라고 쓴다. ‘칼 검’자를 쓰는 산이라니…. 옛날 사람들이 이 산을 ‘칼 고뎅이’라고 부른데서 비롯됐다. 고뎅이는 오르기 힘든 높은 언덕이나 가파른 오르막을 뜻하는 영동지역 사투리이다. 산 이름은 위압적이지만, 그렇게 험한 산은 아니다. 일단 정상의 해발 표고가 그리 높지 않은데다 등산로도 검봉산 자연휴양림을 감싸고 이어지는 코스로 형성돼 있어 대체로 무난하다. 전체 이동거리는 6∼7㎞ 남짓,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
검봉산 일대는 계곡과 정상이 특히 매력적이다. 자연휴양림이 들어선 계곡은 때묻지 않은 자연의 극치를 보여준다, 새소리, 물소리를 벗삼아 걷노라면 어느새 귓전을 간지럽히는 솔바람이 “당신도 이제 자연입니다”라고 속삭이는 듯 정겹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무릎 높이도 안되는 잡목들이 수줍게 비켜선 등산로 주변으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기상을 뽐내고, 동해바다 쪽 산줄기를 따라 짙푸른 포말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등산 중에는 지난 2000년 동해안 전역을 휩쓴 대형 산불 피해 잔흔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동남쪽 산등성이에는 ‘소공대(召公臺)’라는 명소가 있다는 것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소공대가 있는 곳은 와현(瓦峴)인데, 조선 세종 때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하면서 백성 구휼에 힘쓴 황희 정승의 공덕을 기리는 비각이 세워져 있다. 현대식 도로가 나기 이전에는 이곳 검봉산 줄기를 타고 옛길 이동로가 있었기 때문에 검봉, 즉 칼 고뎅이라는 친근한 사투리 표현이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소공대는 울릉도를 조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문사들이 이곳 고개를 넘으면서 울릉도를 바라보고 지은 시가 전한다. 조선 선조 임금 때 정승 벼슬을 지낸 이산해는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시기의 맑은 날에 소공대에서 울릉도가 보인다”고 구체적인 시기를 적시하기도 했다. 아마도 11월 중·하순, 톡 치면 깨질 것 같은 그런 청명한 날이 아닌가 싶다. 검봉산 아래, 임원항은 울릉도까지 거리가 137㎞에 불과하다. 오늘 눈 밝은 이가 있어 검봉산에서 다시 울릉도를 육안으로 관찰하고, 임원항 회로 입맛을 돋운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산행 선물이 되겠다. 강릉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