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교감하며 북돋아야 좋은 길 공유
며칠 전 모임에서 건배 덕담을 하는 동료가 ‘우정은∼산길처럼’이라는 신박한 건배사를 꺼내 좌중의 큰 호응을 산 일이 있었다.
“산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금방 잡목과 풀이 자라 길의 기능을 잃게 되는데, 자주 다니면 항상 편한 길로 유지되니 즐거이 교유하면서 더욱 돈독한 정을 쌓자”는 것이었다. 인간관계를 깊은 산길에 빗댄 절묘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산길은 사람이 이용하지 않으면, 여름 한 철도 지나기 전에 금세 본 모습을 잃어버린다. 풀이나 잡목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는 비 온 뒤에 산이나 들에 나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작은 밭뙈기라도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것은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지난여름 동해시 원방재를 등산할 때 일이다. 원방재는 동해시 신흥동 서학골∼정선군 임계면 가목리로 넘어가는 옛 고갯길이다. 고개 정상이 곧 백두대간 마루금이니 대간 종주를 하는 등산객은 반드시 이 고개 꼭대기를 지나가야 한다. 정상의 높이는 해발 720m. 백두대간 마루금치고는 낮은 편에 속한다. 서학골에서 원방재까지만 등산할 경우에는 왕복 5㎞면 충분하고, 비탈길 난이도도 힘든 편이 아니다.
2∼3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오겠다는 요량으로 등산로에 들어섰는데, 이게 웬일, 초입부터 풀이 우거져 이동에 불편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정상을 찍고 싶어 키 높이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는데, 중턱쯤에 다다르니 아예 길을 분간키 어려울 지경이다. 등산로 곳곳에 주변 지형지물의 유래 등을 알리는 안내판 등은 잘 갖춰 놓았는데, 인적이 뜸해지는 바람에 잡초가 등산로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가시에 찔리고, 벌레에 쏘이고, 수풀 더미에 걸려 넘어지고…. 뱀에게 물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고행도 이런 고행이 없어 결국 8부 능선쯤에서 발길을 되돌리고 말았다.
등산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분명 개운치 않은 일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노수신(盧守愼·1515~1590년)이 “산에 오르면서 정상에 뜻을 두지 않거나, 우물을 파면서 샘물이 솟는 것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이는 필히 중도 포기하는 일로 끝난다”고 한 것처럼 등산하는 이는 누구나 정상을 바라기 마련인데, 길이 너무 안좋아 도중에 포기했으니, 흔치 않은 좌절에 속된 말로 김이 새버린 꼴이었다.
‘우정은 산길처럼’이라는 건배사에 더 격하게 공감한 것은 그날 원방재 산길의 불편한 경험이 문득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서로 교감하면서 북돋아야 더 좋은 길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관계의 중요성을 통해 다시 배우게 된다. 강릉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