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 가보니 처마 밑에 곶감이 주렁주렁 늘어서 한창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말랑말랑 해질 때쯤 하나를 몰래 빼먹으면, 요즘 말로 ‘도파민’이 스르르 도는 순간이더군요.
감을 깎아 매다는 일은 해마다 비슷하지만, 하늘과 햇볕, 바람은 언제나 같지 않기에 그 풍경은 늘 새롭게 느껴집니다. 초가을의 단단한 감이 찬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쪼그라들다가 어느 순간 주황빛이 조용히 깊어집니다. 바람은 열매의 수분을 천천히 걷어 가고, 대신 더 단단한 속살과 은은한 향을 남깁니다. 멀리서 보면 작아진 것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충만해진 모습이죠.
요즘처럼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곶감의 풍경은 유독 마음을 붙잡습니다.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하며,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갑니다. 휴대전화 알림은 하루의 호흡을 끊임없이 흔들고, 정리되지 않은 인간관계나 과도한 선택지는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일의 효율을 높이겠다며 새로운 도구를 더해도, 정작 해야 할 일은 더 늘어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넘침이 주는 피로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요즘 더 실감합니다.
이때 곶감은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햇살과 바람에 몸을 맡긴 시간 동안 감은 스스로 필요 없는 것들을 비워냅니다. 수분도, 부패의 위험도, 겉껍질의 거칠음도 서서히 덜어냅니다. 이 과정은 결코 빠르지 않습니다. 급하게 만들면 맛이 들지 않죠. 바람이 며칠 더 필요하다면 그 며칠을 기꺼이 건너야 합니다. 인내와 여유가 맛의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잡다한 걱정, 지나친 욕심, 비교에서 오는 불안 같은 것들이 마음의 수분처럼 우리를 무겁게 만듭니다. 하루의 일정에 덕지덕지 붙은 일들을 걷어내고 보면, 정말 소중한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제법 쌀쌀해진 바람에 흔들리는 곶감 줄을 바라보다 보면 생각이 참 많아집니다. 삶도 저렇게 조금씩 줄어들며 깊어지는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무엇을 더 채울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낼지를 고민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만의 ‘건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 마음도 곶감처럼 은근한 단맛을 품게 되지 않을까요.
쭈글쭈글 외형이 좀 못나면 어떻습니까. 서두르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필요한 것만 남기며. 그 단순한 방식이 올해 따라 유난히 존경스럽습니다.

